내가 끼이면 누가 날 구해주지<끼인 날>
그림책 리뷰, 김고은 글. 그림, 천 개의 바람' 2021
표지가 참 재미있게 그려져 있는 아이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해서 읽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아이 이름이 없어요. 나는 윤아라고 할게요. 윤아가 7일 동안 온갖 끼인 것들을 빼내어 주느라 애쓰는 이야기예요.
첫 번째 날에는 윤아가 학교를 갔다가 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에 개가 끼여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꺼내 줬어요. 개는 휴 한숨을 쉬었어요. 점심을 먹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서 휩쓸려 하늘로 올라가 버렸대요.
두 번째 날에는 학교를 마치고 동네 슈퍼에서 핫도그를 사서 먹고 있는데 어디서 앵앵 소리가 났어요. 자세히 보니 할머니가 졸고 있는데 주름 사이에서 모기가 끼어 낑낑대고 있지 뭐예요. 살금살금 할머니 곁으로 가서 깨지 않도록 주름을 살짝 벌려서 모기를 구해줬어요. 모기는 할머니 피를 빨아먹으려고 하다가 주름을 올리는 바람에 갇혔대요.
셋째 날에는 윤아가 장난감을 사려고 시내로 나왔어요. 사람들이 북적대는 큰 도로 위 맨홀에 펭귄이 부리를 처박고 바둥거리고 있어요. 윤아는 펭귄을 안고 뒤로 힘껏 잡아당겼어요. 펭귄은 맨홀 아래 물소리가 나니까 물고기가 있는 줄 알고 드려다 보려다가 부리가 끼였대요.
넷째 날에는 쓰레기를 버리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곰이 쓰레기 통에 끼여서 울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곰이 몸집이 크니까 쓰레기통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나오지를 못한 거죠. 윤아는 쓰레기통을 빙빙 돌리면서 곰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했어요.
다섯째 날에 윤아는 엄마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 갔다가 골목을 돌아서는데 아저씨가 방귀를 뀌고 있는데 스컹크가 아저씨 엉덩이에서 끼여 있어요. 스컹크는 아저씨 방귀가 너무 독해서 도전장을 내려다가 아저씨 엉덩이에 갇혀 버렸대요.
여섯째 날 윤아는 운동장에 축구를 하러 갔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를 갔는지 아무도 없고 골대 그물에 문어가 엉겨 끼어 있어요. 윤아는 힘이 들었지만 문어다리 여덟 개를 하나씩 다 풀어 주었어요. 문어는 다리가 많으니까 골키퍼를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봐요.
일곱째 날 윤아는 문방구에 스티커를 사러 갔어요.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누런 방귀 사이에 끼어서 기절해 있어요. 그래서 문방구 문을 활짝 열어젖혔어요. 방귀가 빠져나가고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윤아는 온갖 끼어있는 것들을 해결해 주느라 힘이 다 빠졌어요. 터덜터덜 집으로 왔더니 엄마와 아빠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싸우고 있어요. 서로 너 때문이야라며 눈을 부라리며 싸워요. 윤아가 자세히 보니 엄마와 아빠 사이에 싸움요정이 끼여 있어요. 윤아는 끼여있는 요정을 빼야 엄마아빠가 싸움을 그칠 것 같았어요. 싸움요정에게 나와달라고 사정도 하고 협박도 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싸움요정은 나올 생각을 안 해요. 그러니 엄마 아빠가 싸움을 그치지 않아요. 윤아는 좋은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싸움요정을 살살 간지럼을 태웠어요. 엄마 아빠 사이에 끼여 있던 요정은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드디어 웃기 시작했어요. 싸움요정들은 엄마 아빠 사이에서 빠져나와 날아갔어요.
윤아는 엄마아빠 사이에 들어갔어요. 엄마아빠는 조용해졌어요. 윤아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윤아는 엄마아빠 사이에 끼여 있으니 따뜻하고 편안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어요. 혹시 내가 끼어있을 때 엄마아빠가 싸우면 누가 나를 구해줄까 걱정이 됐어요. 윤아는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은 걱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행복하니까요.
김고은 작가는 이렇게 말했어요.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싸우면 그 사이에 끼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누가 나 좀 꺼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살다 보니 다들 어딘가에, 어느 사이에 끼어
당황하고 때론 힘들지만 또 그러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고 싶었어요.'
윤아는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끼여있는 동물들을 구해줍니다. 끼여있는 동물들은 다들 힘들어합니다. 아무 사랑이 없는 관계에 끼이면 힘든다는 말인 것 같아요. 옆에서 끼여 있으면 윤아는 꺼내줍니다. 지치지요. 끼인 동물이나 구해주는 윤아 모두 지쳤어요. 하지만 윤아가 엄마아빠 사이에 끼인 싸움요정을 꺼내고 윤아가 부모 사이에 끼여있을 때 편안했지요. 그것은 엄마아빠가 윤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끼여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활동하고 오는 것이 아무런 자극도 없이 시간 지나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의 끼인 상황들을 만나고 애쓰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부모마저 싸운다면 윤아는 마음이 어떨까요?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아마 쓰러 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