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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찬 Aug 21. 2023

무서워요<앵그리맨>

동화구연, 앵그리맨, 그로 달레 글/스베인 니후스 그림/황덕령 옮김

영아, 율아

너희들 아침 일찍 일어나더구나. 참 기특하다. 엄마가 그러던데, 너희들이 말 안 해도  저녁에 9시 되면 자고 6시 되면 다 일어난다고 하니 정말 잘하고 있어. 오늘 동화는 '앵그리맨'이라는 동화야. 이 그림동화책은 사실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책이야. 그래서 너희들이 읽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어서 할머니가 풀어서 이야기해 줄게.

이 책은 2003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작가 그로 달래라는 사람이 쓴 책이야. 노르웨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 할머니도 잘 몰라서 지도를 보고 알았어. 북유럽 쪽인데 영국 위에 위치하고 스웨덴 하고 경계에 있더라고. 이 그림책 주인공은 보이라는 아이야. 아빠와 엄마랑 살고

있었어. 율이는 영이 누나가 있지. 누나가 율이 글도 가르쳐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같이 놀아도 주잖아. 그런데 보이라는 아이는 다른 형제가 없고 혼자였어.


보이는 5살쯤 되는 어린아이야. 집에서 놀 때는 자기 방에서 놀기도 하고 거실에서 놀기도 해. 엄마는 집안일을 마치고 시간이 날 때면 보이랑 그림책도 읽어주고 장난감 가지고 놀아줘. 저녁이 되면 아빠가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시지. 보이는 방에서 놀다가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여. 아빠가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살펴보고 있어. 다행히 오늘은 아빠가 웃으면서 퇴근했어. 손에는 맛있는 음식도 사들고 오셨지. 아빠와 엄마, 보이는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어. 아빠랑 제기차기도하고, 공룡그림책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는 시간이야. 보이는 아빠가 참 든든하다고 생각해. 정말 멋있어. '나도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야.'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날은 아빠가 퇴근을 하고 오셨는데 아무 말이 없어.  얼굴이 시무룩하고 피곤해 보이는거야.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은 굳어 있어. 보이는 마음이 조마조마 해. 거실이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아. 금방이라도 유리가 터질 것만 같았거든.   엄마도 몹시 불안했나 봐.  "쉿, 조용히 하렴." 엄마는 보이에게 말했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빠는 거실 의자에 앉아있어. 계속 화난 얼굴을 하고 아직도 아무 말이 없어. 보이는 가슴이 조여 오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어. 긴장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엄마가 보이를 무릎에 앉히고 뭐라고 말을 했는데 보이는 더 불안했어. '엄마, 아무 말하지 마세요. 아빠가 이상해요. 조용히 하세요.'라고 속으로만 말했어. 보이는 아빠가 왜 그럴까.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뭘 잘못말했지. 보이는 자기가 잘못해서 아빠가 화를 낸다고 생각하고 뭘 잘못했는지 깊은 생각에 빠졌어.

"아빠 화났어요?"

"화 안 났다. 화 안 났는데 화났다고 말하지 마라" 아빠 목소리에 가시가 돋혀 있는것 같았어. 아빠의 목소리는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어. '아빠의 얼굴이 아니야. 뭔가가 아빠의 몸속에서 올라오고 있어. 앵그리 맨이 올라오고 있어. 아빠 목을 타고 갈비뼈를 타고 앵그리맨이 올라오고 있어.'  


아빠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거리며 방에 있는 것들을 다 집어던지기 시작했어. 엄마는 고함을 질렀어.  아빠가 엄마를 밀치고 때리고 부수었기 때문이야. 보이는 아빠에게 빌었어.

"아빠 제발 앵그리맨이 나오지 못하게 해 주세요. 착해질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숨도 안 쉴게요."

하지만 앵그리맨은 아빠의 얼굴에, 목에 목구멍에 온통 들어왔어요. 아빠는 엄마와 보이를 따라오며 휴지통을 던지고 텔레비전을 부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렀어.  눈이 뒤집혔어.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하고, 목은 벌겋고, 입술은 뒤틀렸어. 앵그리맨은 전쟁을 업고 왔어.

'아빠가 왜 화가 났을까. 나 때문인가 봐. 더 잘할게요. 더 착해질게요. 뭐든 할게요. 죄송해요. 아빠, 용서해 주세요. 아빠 제발요.'

보이는 숨을 죽이고 방에 숨어 있었어. 무서웠어. 배를 웅크리고 속으로 중얼거려.  '듣지 마, 보지 마, 생각하지 마.'

엄마는 보이에게 자라고 하고 거실로 나갔어. 보이는 잠이 안 왔어. 거실에서 아빠는 엄마를 때리고 그릇을 던지고 고함을 질러. 집이 종이처럼 구겨지는 것 같아. 아빠가 아니야. 앵그리맨이야.

'제발 아빠, 앵그리맨을 내쫓아요.'


한바탕 난리를 친 아빠는 잠잠해졌어. 앵거리맨이 사라졌거든. 아빠가 말했어.

"다시는 화내지 않을게. 두번 다시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하마."

아빠는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어. 엄마가 하얀 손수건을 꺼내와서 아빠의 다친 손을 매어 줬어. 아빠는 엄마에게 사과했어.

"잘할게. 약속하마."

엄마와 보이는 아빠를 안아줬어. 아빠는 흐느껴 울었어.  보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어. 멀리 달아나고 싶었지. 하지만 엄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아. 엄마는 우린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며 보이에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해.


아빠가 저녁에 주스와 사탕을 사 왔는데 보이는 아빠에게 쉽게 갈 수 없어. 앵그리맨이 언제 아빠의 등을 타고 올라올지 모르니까.  아빠가 보이를 안으려 하는데 보이는 아빠를 생각하면 목이 잠겨오고 겁이 나서 도망가려고 해. 앵그리맨은 아빠를 자꾸 괴롭혀. 엄마는 언제나 구석에 앉아 있었어.  보이는 밖으로 나왔어. 보이는 밖으로 나와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엄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마음속에서 자꾸 말이 나오려고 해.  보이는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어. 그 아주머니는 아빠가 가끔씩 그렇게 집에서 난리를 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괜찮니, 얘야?"하고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말이 떨어지지 않아. 입속에서 맴돌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옆에 있던 하얀 개가 보이에게 말했어.

"누군가에게 꼭 말하렴."

"난 못해 못하겠어."

"그럼 편지를 써봐.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해. 편지를 꼭 써" 산새도 들꽃도 바람도 보이에게 용기를 줬어.


보이는 편지를 썼어. 존경하는 임금님, 아빠가 때립니다. 제잘못인가요? 드디어 보이가 해냈지.

임금님이 보이를 찾아왔어. 임금님은 보이에게 말해. "보이야, 편지 잘 받았단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임금님이 아빠를 바라보고 있어. 아빠는 보이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어.

"보이야,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내 잘못이다. "


아빠가 임금님에게 물었어. "제 안의 앵그리맨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놈은 엄청나게 강하다고요."

임금님이 아빠에게 말해요.

"당신이 더 강하다네. 궁전에서 나와 함께 살게. 궁전에는 방이 아주 많으니 희귀한 새들이 사는 커다란 정원도 있지. 여기서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거야."

아빠는 이제 임금님과 함께 궁전에서 살게 되었어. 거기서 아빠가 스스로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야.

아빠 속에는 앵그리맨이 오그리고 앉아 있어. 그 앵그리맨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해. 앵그리맨 뒤에 또 앵그리맨이 있어. 늙고 화난 노인이야. 아빠는 그 사람과도 친해져야 할 거야. 그러면 아빠는 그들이 두렵지 않을 거야.

"아빠가 치료를 받고 나아지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될거야."아빠는 힘들게 말해요.

엄마도 숨을 내쉬며 미소 지어.

"아빠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놀러 오렴." 임금님이 보이에게 말해요. 아빠는 햇살 속에 보이를 들어 올려 풀밭을 돌고 또 돌았어. 보이는 개와 뛰어놀 거예요. 모든 걸 잊고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에서 믿고 뛰어내릴 거예요. 그 아래엔 누가 있을 테니까요. 바로 아빠죠. 아빠는 뛰어내리는 보이를 받아 줄 거예요.

"잘했다 내 아들."

모든 문이 활짝 열렸어요.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쳐요. 보이의 입속에 별들이 반짝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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