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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잃어가는 시대에

이제는 멈춰 서서 생각해 볼 때

by 운아당

23개월의 작은 생명이
혼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프고 약한 몸으로,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차갑게 식어갔다는 이야기를.

마음이 아파 말문이 막혔다.


그 아이가 떠난 자리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부모는 게임, 오락, 잠깐의 재미에 빠져
바로 곁에 있던 자식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이 시대의 풍경 앞에서
망연자실,

사람들은 이 뉴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는 지금
사람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이 존재로서의 소중함보다는
부담, 혹은 배경으로 여겨지는 세상.
한 생명의 무게보다
그들의 사생활, 흥밋거리가 더 회자되는 곳.


하지만 나는 오늘
잠시 멈춰 서서 허공에 대고라도 말하고 싶다.

사람은 귀한 존재라고.
아무리 작고 연약한 아이도,
말이 없는 노인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도,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고.


나는 모든 엄마가
아이를 당연히 사랑할 거라 믿었다.

모성은 본능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랑은 본능이 아니라,
돌봄을 통해 배우는 심리적 능력이라는 말에

새로운 깨우침이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은 말했다.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려면 먼저 ‘충분히 좋은 환경’과

‘지지받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존중받고,
이해받고,
무조건적으로 사랑받았던 사람이
또 다른 생명에게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 많은 아이들이
정서적 방치 속에서 자라났다.

있는 그대로 존재를 사랑받기보다,

사랑받기 위해 참아야 했고,
눈치 봐야 했고,
성과를 보여야 했다.

그렇게 자란 사람에게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돌보는 일은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된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아이보다 나의 자유, 나의 시간, 나의 쾌락을
우선하라고 말한다.

'나부터 챙기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그러나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힘으로 타인을 더 따뜻하게 돌볼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이 말이 스스로 사랑하라는 공감의 메시지가 아니라
쾌락의 정당화로 변질될 때,
모성은 축복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감과 짐처럼 느껴진다.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배울 기회 없이 자란 것이다.

그래서 그 상처는
또 다른 아이에게로 전해진다.
사랑받지 못한 마음이
또 다른 생명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기 전에

이제는 멈춰 서서
생각해 볼 때다.


사람을 다시 귀하게 여기는 일.
작은 아이의 울음에도
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것이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작은 인간다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멈추어서

있는 그대로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아닐까.



* 2025. 2. 20. 남양주시에서 23개월 아기가 혼자 집에서 숨진 채 발견, 30대 부모는 PC방에서 밤새도록 게임하다가 CCTV로 확인하고 움직임이 없어 귀가하여 보니 아기는 사망한 상태였음. 이 사건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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