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14
“감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충분하게 만든다.” ― 멜로디 비티
얼마 전, 거의 스무 해 만에 한 선배를 만났다.
“밥 한번 먹자.”
느닷없는 전화였다. 그 이름이 휴대전화 화면에 뜬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목소리는 어딘가 그대로였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그녀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두 팔을 벌렸다. 마치 어제 헤어졌다가 오늘 다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웃었다. 스무 해라는 시간의 간격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우리는 곧바로 지난날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내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했을까.
“나, 오 년 전에 명예퇴직했어.”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시간이 많아지니까 이상하게 네가 자꾸 떠오르더라.”
그러다 그녀는 오래 묵혀 두었던 기억 하나를 조심스레 꺼냈다.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 내가 편지 한 통을 써서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짧게 말했단다.
‘기도할게요.’
나는 그 일을 거의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서른 즈음에 이혼을 했다. 남편의 폭력이 이유였다.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의 이혼은 여자에게 더 무거운 낙인이 되곤 했다. 사람들은 쉽게 고개를 돌렸고, 위로 대신 침묵을 건넸다. 나 역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성경 구절 몇 줄을 떠올려 서툰 위로를 건넸던 것 같다. 그저 작은 종이에 적은 짧은 편지였을 뿐인데, 그것이 그녀에게는 오래 남았던 모양이다.
“그 편지 덕분에 버텼어. 너의 편지를 받고 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마음이 쓰여 한 행동이었을 뿐인데, 누군가의 긴 시간을 건너 오늘의 만남까지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말 한마디, 종이 한 장이 사람의 삶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삶을 천천히 돌아보면,
나를 붙잡아 준 사람,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 그리고 용기와 힘을 건네준 짧은 한마디들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지냈을 뿐,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었습니다.
힘들었던 장면은 오래 기억되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했던 순간들은 금세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그 온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고요히 남아 있을 뿐입니다.
나를 기다려준 사람,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준 사람,
내가 흔들릴 때조차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이런 존재들은 언제나 거창한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몸짓, 미묘한 말투, 잠시 머물러 준 눈빛 같은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 나를 살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글쓰기’란 잊고 있던 따뜻함을 다시 불러오는 연습입니다.
“고마웠어.”
“그때 네가 있어서 나는 괜찮았어.”
이 짧은 문장들은 마음속 닫혀 있던 문을 조심스레 열어줍니다.
감사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사랑과 연결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언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말로 꺼내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어색해서, 적당한 순간을 놓쳐서, 혹은 상대가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감사는 표현하는 순간 비로소 관계를 따뜻하게 바꾸는 힘을 가집니다.
어떤 이의 존재가 나를 버티게 해 주고,
누군가의 짧은 말이 하루를 견디게 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화려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서 나를 향해 있어 준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그 따뜻함을 다시 꺼내어, 마음속에서만 품고 있던 말을 조용히 적어보는 시간입니다.
감사는 상대를 위한 고백이자, 나 자신을 위한 위로입니다.
그 작은 글 한 줄이 마음의 무게를 부드럽게 덜어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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