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Calculus)과 축적

압도적인 면적을 만드는 시간

by 박보라

미분계수(Derivative): 찢어져야 자란다

[위치가 아니라 기울기다]


학원에서 수업하다보면, 가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자신의 미래와 혼동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 4등급을 받는 학생은 자신이 영원히 4등급일거라 위축된다. 1등급을 받는 학생은 자신이 영원히 상위권일 거라 믿으며 자만하고. 둘 다 틀렸다. 그들은 지금 특정 x값의 y값(함숫값)만 보고 있다.


하지만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만든 미적분의 세계에서, y값보다 훨씬 중요한 정보가 있다. 바로 f'(x), 즉 도함수(Derivative)다. 미분은 무엇인가. 복잡해 보이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어떤 한 시점에서의 변화율, 굳이 그래프로 따지면 한 점에서 곡선이 어느 정도의 경사를 가지고 기울어져 있는가(접선의 기울기)하는 것이다.


통장잔고는 바닥났고, 애인과 헤어지고, 회사에선 타박을 받고 있다고 해보자. 그렇게 y값이 바닥이라고 치자. 하지만 당신의 하루가 치열해서 미분계수 f'(x)가 양수(+)라면? 당신은 지금 올라가는 중이다. 시간(t)이 흐르면 당신의 자리는 반드시 올라간다. 반대로 지금 내가 1등급에 금수저에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라고 해보자. y값이 꼭대기에 있겠지. 그래도 미분계수가 음수(-)라면? 당신은 추락하는 중이다. 머지않아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그럼 가장 위험한 상태는 언제일까? 미분계수가 ‘0’일 때다. 변화가 없는 상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이건 안정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미분의 관점에선 정지이자 곧 도태의 전조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높이가 아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만들어낸 기울기의 각도다.


[상수는 미분하면 0이 된다]


그렇다면 양(+)의 기울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학 공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y = C (상수함수)를 미분하면 y' = 0이다. 즉, 변하지 않는 것은 미분하면 사라진다. 매일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패턴으로, 편안하게 반복하는 일상은 상수(C)다.


어제와 똑같은 무게를 들고, 이미 아는 내용만 반복해서 보고,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려 편한 대화만 나누는 삶. 겉보기엔 성실해 보일지 몰라도, 미분하면 결과는 0이다. 성장은 없다. 변화율(dydx)이 발생하려면, 반드시 입력값에 변화(dx)가 있어야 한다. 평소보다 더 무겁고, 더 난해하고,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오늘 하루 무탈히 보내며, 많은 사람들이 안도한다. 하지만 학습자의 관점에서 무탈함은 자랑이 아니다. 그건 오늘 하루 내 뇌와 근육에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성장의 기울기가 0이었다는 자백이랄까.


[찢어져야 자란다 : 근비대의 메커니즘]


헬스장에서 근육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살펴보자. 무거운 것을 들면 근육이 펌핑되면서 풍선처럼 커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혈류 현상일 뿐이다. 진짜 성장은 운동이 끝난 후, 잠든 사이에 일어난다. 그리고 그 전제 조건은 상처다.


근육은 감당하기 힘든 저항을 만났을 때, 근섬유에 미세한 파열이 생긴다. 말 그대로 근육이 찢어지는 것. 우리 몸은 이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단백질을 동원해 찢어진 부위를 보수한다. 이때 뇌는 명령한다. “다음번에도 이런 무게가 들어올지 모르니, 이전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땜질해라.”


이것이 초과 회복(Super-compensation), 즉 근비대의 원리다. 핵심은 명확하다. 찢어지지 않으면 복구도 없고, 복구가 없으면 성장도 없다. 그래서 보디빌더들은 운동 다음 날 찾아오는 근육통을 사랑한다. 그 통증이야말로 내가 어제 제대로 찢어졌다는 증거, 즉 미분계수가 양수(+)였다는 확실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만약 헬스장을 나오는데 몸이 개운하고, 힘들지도 않았다면 운동이 아니고 노동을 한 건 아닌지 돌아보자. 스트레칭이나 하고 온 것이다. 상처 없는 성장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뇌세포도 찢어져야 한다]


끔찍하지만 정직한 이 원리는 공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당신은 오늘 공부하면서 머리가 아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가 술술 잘 되기를 바란다. 책장이 슥슥 넘어가고 강사의 말이 귀에 쏙쏙 박히면 오늘 공부 좀 됐다, 착각한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술술 읽히는 내용은 이미 당신이 알고 있거나, 아니면 너무 쉬워서 뇌가 자극을 받지 않는 상태일 확률이 높다. 진짜 학습은 턱턱 막힐 때 일어난다. 난해한 철학책을 읽으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머리를 쥐어뜯을 때. 안 풀리는 수학 문제 하나를 붙들고 1시간째 끙끙대며 식은땀을 흘릴 때. 그때가 바로 당신의 지적 근섬유가 찢어지고 있는 순간이다.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이것은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실재하는 감각이다. 기존의 신경망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고밀도의 정보가 들어왔을 때, 뇌는 과부하에 걸린다. 포도당을 태우며 새로운 시냅스를 연결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두통, 답답함, 피로감. 그것은 불쾌한 신호가 아니라, 당신의 뇌가 더 똑똑해지고 있다는 성장통이다. 그러니 공부하다가 머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찾지 말고 기뻐하라.


[미분 불가능한 점(첨점)을 사랑하라]


수학에는 첨점(Sharp Point)이란 개념이 있다. 그래프가 매끄럽지 않고 뾰족하게 꺾이는 점. 이 점에선 미분이 불가능하다. 인생에도 이런 첨점이 있다. 예기치 못한 실패, 감당할 수 없는 시련,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지식의 벽. 우리는 그 뾰족한 점에 찔려 아파한다. 하지만 그래프의 추세가 바뀌는 곳은 항상 그런 뾰족한 지점이다.


평탄하게만 사는 사람의 인생 그래프는 매끄러운 직선이다. 미분하면 상수만 남는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반면, 계속해서 부딪히고, 깨지고, 찢어지며 방향을 트는 사람의 인생은 울퉁불퉁하지만 역동적이다. 그 뾰족한 고통의 점들이 모여 거대한 상승 곡선을 만든다.


[오늘의 dx를 점검하라]


미분의 표현인 dydx에서 dx는 아주 미세한 변화를 뜻한다. 거창한 혁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불편했는가. 익숙한 무게 대신 2.5kg짜리 원판 하나를 더 끼웠는가. 쉬운 에세이 대신 머리 아픈 인문학 책을 한 페이지라도 더 읽었는가. 모르는 문제를 해설지 없이 5분만 더 고민해 보았는가.


그 미세한 불편함, 그 찰나의 찢어짐. 그것이 오늘 당신의 기울기다. 편안함은 퇴보다. 고통은 신호고. 오늘 하루, 제대로 찢어졌기를 바란다. 그래야 내일 더 단단하게 아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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