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범위(ROM)와 원전

깔짝대지 말고 바닥까지 찍어라

by 박보라


[140kg의 진실]


헬스장에서 가장 보기 민망한 장면은 초보자의 실수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자의 가오다. 스쿼트 랙에 140kg을 꽂아둔 사람이 있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바벨을 짊어진다. 주변의 시선이 쏠린다. 우렁찬 기합과 함께 그가 앉았다 일어난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자세. 무릎을 10cm쯤 굽혔다가 펴는 운동을 반복했다. 개수는 10개를 채웠다. 그는 만족스럽게 바벨을 내려놓았다.


이건 리프팅일까, 에고(Ego) 리프팅일까. 근육으로 든 걸까, 자존심으로 든 걸까. 무겁게는 들고 싶고, 깊게 앉기는 두려워서 가동범위를 속인게 아닐까. 타겟 근육인 허벅지에는 자극이 안 갈 것 같다. 무릎이나 허리는 엄청 아프지 않을까. 부상은 없었을까.


이 민망한 풍경은 도서관과 교실에서도 매일 벌어진다. 어려운 원서를 읽기는 싫고, 남들에게 아는 척은 하고 싶으니 요약본만 읽는 사람들. 복잡한 증명 과정은 건너뛰고, 공식만 달달 외워 문제를 푸는 학생들. 이들은 자신이 공부했다고 믿는다. 남들보다 빠르게 진도 나갔다 뿌듯해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들은 지적인 에고 리프팅을 하고 있을 뿐이다. 거의 내려가지 않은 그 사람의 스쿼트가 운동이 아니듯, 사고의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은 공부는 학습이 아니다.


[풀 스쿼트와 원전의 공포]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가동범위(ROM, Range of Motion)다. 근육을 최대한 늘렸다가 최대한 수축해야 한다. 스쿼트를 예로 들면, 엉덩이가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깊이, 즉 풀 스쿼트(Full Squat)를 해야 진짜 하체 운동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게 앉기를 꺼린다. 왜냐하면 최하단 지점이 가장 고통스럽고 올라오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에. 바벨을 짊어지고 바닥까지 주저앉았을 때,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깔릴 것 같은 공포. 중력이 내 몸을 짓이기는 압박감. 그 사점(Dead Point)을 뚫고 올라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무릎을 펴버린다. 나도 그렇고.


학습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식의 가장 깊은 바닥, 즉 원전(Original Text)과 증명의 세계는 두렵다.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난해한 책을 펴야 한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리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그 바닥의 혼란을 견뎌야 한다. 미적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공식을 외우기 전에 극한의 개념부터 증명까지 유도해 봐야 한다. 답이 안나오는 그 막막함을 견뎌야 한다.


이 과정은 풀 스쿼트의 최하단 지점처럼 고통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한다. 유튜브 요약 영상을 보고 니체를 다 안다고 착각한다. 강사가 정리해 준 공식 암기 노트를 보고 수학 공부를 끝냈다 생각한다. 이것은 명백히 스쿼트를 하는 척만 하는 것이다. 깔짝거렸단 말이다.


[요약본은 지적 이유식이다]


현대 사회는 요약의 사회다. "3줄 요약", "5분 순삭 영화 리뷰", "한 장으로 끝내는 수학 공식". 효율이라는 명분으로 엑기스만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씹기 좋게 갈아 만든 이유식을 떠먹여 달라고 입을 벌린다. 하지만 기억하자. 저항을 이겨내야 근육이 생긴다. 누군가 다 씹어서 소화되기 좋게 만든 요약본에는 저항이 없다. 턱관절을 움직일 필요도 없고, 위장이 운동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삼키면 된다. 편하고 똑똑해진 느낌. 하지만 그 느낌만큼 당신의 사고력은 퇴화한다.


생각해 보자. 저자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수년을 고민하고,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 치열한 사고의 궤적이 문장 곳곳에 묻어 있다. 그런데 그걸 누군가가 A4 두 장으로 요약해 버리면, 저자의 고뇌와 맥락은 전부 증발한다. 정보는 얻었을지 몰라도, 지혜나 통찰은 얻지 못한다.


수학 공식도 마찬가지다. 공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천재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했던 논리의 결정체다. 여기서 이 변수가 왜 튀어나왔는지, 이 과정이 왜 필요한지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학적 사고력이 길러진다. 결과만 외운 사람은 문제를 조금만 비틀면 손을 대지 못한다. 바닥을 찍어본 적이 없으니까. 기초가 없으니 응용이 안 된다.


[바닥을 찍어야 탄성이 생긴다]


스쿼트에서 깊게 앉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운동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야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신장 반사(Stretch Reflex)라 한다. 근육이 최대한 늘어나는 순간, 고무줄처럼 튕겨 올라오려는 탄성이 생긴다. 바닥을 찍는 순간 생기는 그 반동을 이용해야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다.


공부도 깊게 파고든 사람에게만 생기는 지적 탄성이 있다. 원전의 난해함과 싸워 이겨본 사람은, 다른 어려운 책을 만나도 겁먹지 않는다. "칸트의 문장도 기어이 읽어냈는데, 이 정도쯤이야." 수학 증명의 늪을 건너본 사람은, 낯선 킬러 문항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는다. 형태는 다르지만, 논리의 구조는 그때 그 증명과 같을 거란 믿음이 있으니까. 이게 진짜 실력이다. 요령으로 점수를 딴 사람은 위기에서 무너지지만, 바닥을 찍고 올라온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더 강한 탄성을 발휘한다.


[다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


헬스장에서 무릎을 다치는 사람은 대부분 어설프게 앉았다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브레이크를 너무 일찍 밟으면 관절에 무리가 간다. 오히려 자세를 잡고 끝까지 깊게 앉는 것이 무릎 건강에 더 좋다. 해부학적으로 그렇다.


인생도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사고를 친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보다, 요약본 열 개를 읽고 아는 척하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법. 어설픈 지식은 편견과 오만을 낳고, 결국 인생을 망치는 독이 된다.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 인정하자. 그리고 알고 싶다면, 바닥까지 내려가자. 남들이 "그거 언제 다 읽냐", "시간 낭비다"라고 비웃어도 흔들리지 말고. 그들은 평생 140kg을 들었다고 착각하며 살겠지만, 다리는 젓가락처럼 가늘 것이다. 당신이 묵묵히 60kg으로 바닥까지 찍으며 만든 허벅지가, 훗날 그들의 140kg보다 훨씬 거대하고 단단해질 것이다.


[품격 있는 하강]


이제 책상 앞의 태도를 점검해 보자. 당신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공부하는 척하고 있는가. 해설지를 펴놓고 눈으로만 풀고 있지는 않으신지. 어려운 문장이 나오면 슬그머니 건너뛰면서.

가동범위를 속이지 마라. 자신을 기만하지 마라. 애초에 공짜 점심은 없고, 고통 없는 성장도 없다.


텍스트의 난해함 앞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깊은 심연 속으로 천천히 하강하라. 숨이 막히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그 바닥.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그 지점까지 내려갔을 때, 비로소 당신의 뇌는 성장할 준비를 마친다.


깔짝대지 마라. 바닥을 찍어라. 그래야 박차고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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