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답지가 사라진 세계의 선언문

by 박보라


매일 밤 11시, 학원의 출입문을 잠그면 그때부터 나의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강의실. 바닥엔 수북한 지우개 가루가, 공기 중엔 미처 가라앉지 못한 분필 가루가 부유한다. 적막 속에서 칠판을 지울 때마다 생각한다. 이곳은 점수를 찍어내는 공장인가, 아니면 성적표를 위한 거래소인가. 사람들은 입시 학원을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내 정의는 다르다. 여기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법을 가르치는 훈련소다.


강의실에서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 답 이거 맞아요? 채점 좀 해주세요.” 아이들은 빨간 동그라미 하나에 안도하고, 빗금 하나에 세상을 잃은 듯 찌푸린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나는 어른들의 표정을 자주 겹쳐 본다. 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를 서성이며 “이 길이 맞나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묻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꾹 다운 입 같은.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시험에 익숙해져 왔다. 하지만 학창 시절이 끝나는 순간, 시험은 계속 보는데 답지와 채점자는 사라진다. 매일 치러지지만 아무도 채점해주지 않는 시험. 틀리면 다시 풀 수 없고 답도 해설지도 없다. 그런 전장에, 우리는 덩그러니 서 있다.


그런 우리가 짠한 걸까.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위로한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마음껏 먹어도 살이 빠질거란, 알면서도 속는 거짓말. 나는 그 달콤함이 두렵다. 자연의 법칙은 냉정하단 걸 아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가만히 두면 질서에서 무질서로, 생성에서 소멸로 흐른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엔트로피라 부르고, 운동 생리학에서는 근위축이라 부른다.


건물은 낡고, 쇠는 녹슬고, 방치된 근육은 사라진다.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 가만히 있으면 현상 유지가 아니라 서서히, 확실하게 무너져 내린다. 삶의 중력은 우리가 잠든 순간에도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니 나 자신을 키우는 건 성공을 위해 하는 우아한 취미 정도로 생각하면 안된다. 나를 키우는 학습은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내리는 거대한 중력에 맞서, 나를 지탱하기 위한 유일한 저항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공식에 나를 끼워 맞추는 종속적 변수로 살아온 기간이 꽤 길다. 태어난 순간부터 철 들기 전 어느 순간까지.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그 식에 x값인 나를 집어넣으면 안전한 y값이 나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식을 바꾸는 순간, 나는 길을 잃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남이 만든 식을 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식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다. 방정식을 풀기 위해 불필요한 항들을 넘겨버리는 고독을 견뎌야 하고, 뇌에 쥐가 나고 근육이 찢어지는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무거운 중력을 이기고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다.


이 글은 당신에게 다 잘 될 거라 말하는 따뜻한 글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당신의 근육은 빠지고 뇌는 매끈해지고 있으니, 당장 쇠질을 시작하라 독촉하는 훈련 매뉴얼에 가깝다. 이제부터 머리로는 차가운 수학적 사고를, 몸으로는 정직한 운동의 원리를 빌려 삶을 해부해 보려 한다. 막연한 불안을 인수분해하여 쪼개고, 어제의 나보다 미세하게 나아가는 미분의 기울기를 만들고, 지루한 반복을 적분하여 압도적인 인생의 깊이를 쌓아 올리는 법에 대하여.


겁을 먹지는 말자.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강하고, 영혼은 아직 늙지 않았다. 삶의 무게는 영원히 줄어들지 않겠지만, 그것을 들어 올리는 우리의 힘은 분명 키울 수 있다.

답지가 사라진 세계에서, 오직 나만의 답을 쓰기 위한 훈련. 시작해보자.


<글쓴이 소개>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 하루를 열거나 닫으며,

따듯한 마음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아이들이 학습을 통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매일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