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Constant)와 바벨

짐은 덜어지지 않는다

by 박보라


[중력은 공평하게, 그러나 무자비하게]


오전 9시. 헬스장에 들어서면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폐로 들어온다. 쇠 냄새와 고무 냄새, 그리고 어제 누군가가 흘리고 갔을 땀 냄새가 뒤섞인. 이 냄새를 맡으면 비로소 내가 현실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음을 자각한다.


스쿼트 랙 앞에 선다. 빈 바(Bar)의 무게 20kg. 양쪽에 20kg 원판을 두 장씩 끼운다. 합계 60kg. 차가운 널링(Knurling, 미끄럼 방지 홈)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거울 속의 나를 멍하니 한 번 쳐다보고, 바벨을 어깨에 얹기 전 한 번 심호흡. 이 순간만큼은 어떤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다.


잠을 설쳤든, 이혼을 했든,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났든, 60kg의 쇳덩이는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오늘 이 사람 마음이 힘드니, 특별히 40kg인 척 가볍게 느껴져 줘야지.”

물리의 세계에서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력 가속도는 9.8m/s²라는 고정된 값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를 수직 아래로 잡아당긴다. 60kg은 내 기분과 상관없이, 언제나 무자비할 정도로 정확하게 60kg였다.


이것이 내가 아침에 종종 바벨을 드는 이유다. 이 차갑고 무거운 감각이, 나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리 하나를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 결코 변하지 않을 무거운 무게들이 있다는 것.


[상수(Constant) : 신도 바꿀 수 없는 값]


수학에서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값을 상수(Constant, C)라고 부른다.

방정식 y = x + 3에서 x와 y는 요리조리 변할 수 있지만, 저 뒤에 붙은 숫자 3은 죽었다 깨어나도 3이다. 식을 미분해서 날려버리지 않는 한,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식의 결과값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인생 방정식에도 지독한 상수가 존재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늙어가는 부모님의 시간, 타고난 유전자와 신체 골격, 어쩔 수 없이 짊어진 빚, 그리고 타인의 마음.


이것을 통틀어 ‘삶의 무게’라고 볼러도 될까.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상수를 변수로 착각하거나, 혹은 바꾸려 들기 때문. 학원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상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수없이 만난다.


“선생님, 제가 중학교 때 수학을 놓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1등급일 텐데요.” (과거라는 상수에 집착)

“우리 부모님이 조금만 더 부자였더라면 제가 이렇게 안 살 텐데요.” (환경이라는 상수에 집착)

“저 친구는 왜 저를 싫어할까요?” (타인이라는 상수에 집착)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접근방식이다.

이미 확정된 값(C)을 두고 “만약에(If)”라는 가정을 붙여봐야 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실낱같은 희망도, 어쩌면 이루어질 지도 모르는 기도도 아니다. 그냥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망상이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상수는 변하지 않는다. 3은 영원히 3이고, 100kg은 영원히 100kg이다.


[상수는 죄가 없다]


헬스장에서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자신의 코어가 버틸 수 없는 무게를 꽂아놓고, 자세가 무너지는 줄도 모른 채 억지로 밀어 올리는 것. 다리가 안으로 말리고 허리가 꺾인다. 결국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헬스장을 탓하고 기구를 탓한다.


“이 기구 각도가 이상해.”

“오늘은 바벨이 너무 무거운데?”


기구는 죄가 없다. 바벨은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중력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바벨이 나를 공격한 게 아니라 내가 그 상수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인생도 똑같다. 빚이 많아서 불행한 게 아니다. 빚이라는 상수를 감당할 경제적 근력이 부족해서 불행한 것이다. 상사의 업무 지시가 부당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그 업무량을 쳐내거나, 부당함에 논리적으로 맞설 지적 근력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외친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한 시련이, 라며 원망한다. 하지만 중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당신이 든 100kg이나, 그가 든 100kg이나 똑같은 무게다.

세상은 당신을 특별히 미워하지 않는다. 그저 물리 법칙대로 돌아갈 뿐. 상수는 그냥 그 자리에 무심하게 놓여 있다. 그것을 재앙으로 받아들일지, 도전으로 받아들일지는 오직 당신에게 달려 있다.


[유일한 변수, x를 찾아라]


그렇다면 이 꿈도 희망도 없는, 상수들로 꽉 막힌 인생 방정식에서 우리는 어떻게 답을 구해야 할까? 여기에서 부터 이과적 생존법이 필요하다. 인생의 함수를 단순하게 y = C + f(x)라고 가정해 보자.

y는 내 인생의 결과값(성공, 행복)이고, C는 바꿀 수 없는 환경(상수)이다. y값을 키우고 싶은데 C가 마이너스라며 좌절하고 있는가? 수학적으로 생각해 보자자. C가 고정되어 있다면, 결과값 y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함수 f(x) 안에 들어있는 미지수, x뿐이다.


변수(Variable). 말 그대로 변할 수 있는 수. 거대한 우주에서, 이 복잡한 인생의 식에서 내가 의지대로 값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자.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바벨의 무게(C)를 줄일 수 없다면, 그것을 들어 올리는 나의 근력(x)을 키우면 된다. 대출금(C)을 깎을 수 없다면, 나의 소득 창출 능력(x)을 극대화하면 된다. 타인의 비난(C)을 막을 수 없다면,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수 있는 멘탈(x)을 단련하면 된다.

너무 뻔한 소리 같을 수도 있다. 흔한 노력 타령처럼 들릴 수도 있고. 하지만 헬스장을 다시 떠올려 보자. 저쪽 구석의 초보자는 20kg 앞에서도 다리를 떨며 두려워하지만, 옆의 숙련자는 140kg을 꽂고도 가볍게(Light Weight) 들어 올린다.


두 사람에게 작용하는 중력(C)은 똑같다. 다른 것은 오직 하나. 그 무게를 대하는 수행 능력(x)의 차이일 뿐. 삶의 고수들은 상수를 탓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난이도가 높으면 내가 레벨업되면 된다.


고민할 시간에 스쿼트 한 세트 더 하고, 한탄할 시간에 책 한 페이지를 더 읽는다. 그게 내 인생의 y값을 우상향 시킬 유일한 해법임을, 우리는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텐데.


[무거움은 상대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변수(x)를 키워서 강해지면, 절대적인 상수(C)가 작게 느껴지는 상대적인 기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헬스장에서 처음 바벨을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 빈 봉(20kg)만 들어도 팔이 후들거렸고, 다음날 설거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근육통에 시달렸다. 그때 20kg은 나에게 감당 불가능한 상수였다. 하지만 몇 개월 간, 꾸준히 땀 흘려 훈련한 사람에게 20kg은 어떤 무게일까. 그건 이제 운동 시작 전 몸을 푸는 가벼운 웜업 무게일 뿐이다. 20kg이라는 물리적 질량이 0kg으로 변했나? 아니다. 20kg는 여전히 20kg다.


변한 건 나다. 근섬유가 두꺼워졌고, 신경계가 발달했으며, 무게를 통제하는 요령이 생겼다.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 보이기 마련이다. 죽기 살기로 학습을 하고, 몸을 단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짐을 덜어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어린아이의 태도다. 어른은 짐을 덜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신도 그런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 어른은 이렇게 기도한다.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꼿꼿이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등과, 부러지지 않는 다리를 주십시오.”

당신을 짓누르는 그 무게. 가난, 결핍, 콤플렉스, 불안.

그건 안타깝게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 어깨 위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을 것이다. 도망치려 하지 마라. 도망쳐도 낙원은 없다. 거기에도 똑같은 질량의 중력이 작용한다. 대신 당신이라는 변수 x를 극한(limit)으로 키워보자. 책을 읽어 뇌의 출력을 높이고, 쇠를 들어 육체의 출력을 높이자. 그래서 언젠가 그 거대한 무게가 내 어깨 위에서 솜털처럼 느껴지는 기적 같은 순간, 상대적 가벼움의 순간을 맞이해 보자.


다시, 헬스장의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나는 바벨을 잡는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묵직한 차가움과 무게. 이제는 무섭다고 피하지 않을 거다. 내일도 눈을 뜨면 무거운 상수가 나를 짓누르겠지. 하지만 나는 결국 들어 올릴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의 나는, 아주 조금 더 강해질테니까. 변수는 상수보다 강하다. 그것이 내가 믿는 유일한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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