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세상을 바꾼 사람이었다.
1957년, 전란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한국에 도착한 젊은 성직자 한 사람. 노엘 오닐, 아일랜드 출신의 가톨릭 신부. 그는 단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이 땅을 선택했다.
그가 원한 것은 단 하나였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곁에 있고 싶다."
그의 한국 이름은 천노엘. '하늘의 선물'처럼, 그는 낮고 조용하게 우리 곁에 머물렀다.
1931년 아일랜드 남부의 시골 마을. 농가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난 노엘은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함께 자랐고, 그 안에서 나눔의 기쁨과 신앙의 따뜻함을 배웠다.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해는 1956년. 그 이듬해, 그는 미지의 나라였던 한국으로 떠났다. 목적지는 전쟁의 폐허 위에 다시 일어서는 한반도.
그는 서울에서 2년간 한국어를 배우며,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과의 교감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8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첫 사목을 시작했다. 이 땅의 사제, 이 땅의 이웃이 되기 위한 걸음이었다.
천 신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겼다. 북동본당 주임신부 시절, 그는 무등갱생원을 자주 찾았다. 그곳은 알코올 중독자, 고아, 노인, 발달장애인이 함께 모여 살던 대형 수용시설. 이름도, 가족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지적장애인들을 마주하며, 그는 속으로 울었다.
“왜 이 아이들은 집이 없을까?”
그 질문이 그의 삶을 바꿨다.
1981년, 그는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의 장애인 복지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장애인도 마을 안에서 살아야 한다. 따뜻한 이웃으로, 가족처럼."
그해, 그는 광주 월산동의 작은 주택 두 채를 빌렸다. 지적장애 여성 1명과 봉사자 2명이 함께 생활하는 그룹홈. 그것이 한국 장애인 복지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말보다는, 삶으로 보여준 실천이었다.
"동네 목욕탕에서 발달장애 친구가 보이면 이상한가요?"
천 신부는 그렇게 물었다. 장애인도 일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우리 모두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1985년, 엠마우스복지관을 설립했다. 장애인들이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 그리고 1993년, 무지개공동회를 만들며 공동체의 꿈을 넓혔다.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진 존재였다. 그들이 요리하고, 청소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공간. 천 신부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때론 조언자로, 때론 친구로, 그리고 늘 지켜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2023년 기준, 전국 746곳에서 2,800명 이상이 그룹홈에 거주하고 있다. 천 신부가 처음 문을 연 그 작은 집에서 시작된 변화였다.
광주의 한 동네.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장을 보고, 이웃들과 안부를 나누는 그곳. 천 신부와 동료들이 40년 넘게 쌓아온 신뢰의 풍경이다. 그는 늘 말했다.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그의 사목은 강단이나 성당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의 밥상, 매일의 대화, 매일의 손잡음. 거기에 천 신부의 목회가 있었다.
1991년, 그는 광주시 제1호 명예시민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 국적보다 더 큰 것은, 그가 우리 곁에 살아준 시간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이 없는 뒤에도 공동체가 잘 돌아가길 바랐다. 그래서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책임을 나누고, 운영을 물려주며 그는 점점 뒤로 물러섰다.
2023년 7월, 건강 악화로 그는 아일랜드로 귀향했다. 병세는 심각했고, 활동은 불가능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떠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있습니다."
2025년 6월 1일, 향년 93세. 아일랜드에서 선종한 천노엘 신부. 그러나 그의 유해 일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가 사랑한 땅, 그가 함께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기 위해.
천노엘 신부는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되어주었다. 그의 삶은 예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다. 함께 걷고, 들어주고, 끝까지 남아주는 것.
그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항상 인내하고 사랑해 주세요.”
그 말이 그저 훈계가 아닌, 삶에서 우러나온 말이었기에 우리는 믿고 따를 수 있다.
오늘도 어딘가에, 함께 걷는 사람을 기다리는 이가 있다. 천 신부의 이야기가 그 곁에 닿기를 바라며.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천노엘이 되기를 꿈꿔본다.
**신문기자 시절 두 차례 인터뷰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분은 말이 많지 않았지만, 침묵 속에 품은 사랑은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Eternal rest grant unto him, O Lord, and let perpetual light shine upon him.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시고,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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