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 한 가지 소식이 있어."
"아... 설마..."
"나 5월에 결혼한다."
종종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결혼 소식을 알렸다. 오래전부터 좋은 사람 만나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더 많이 축하해주어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 뿐인데 왜 난 '다들 나한테 왜 그래?'라는 생각이 든 것인지.
그녀가 들려준 결혼 스토리는 더욱 충격이었다. 사정이 생겨 '남자.사람.친구'와 룸메이트로 살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그녀의 부모님은 노발대발하면서, 그 친구를 한 번 보자고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서 내 친구의 어머니가 물으셨다.
"자네 우리 OO를 좋아하나?"
"좋아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겠죠."
그것이 시작이고, 그것이 결혼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정말 아무 감정 없는, 그래서 선뜻 남는 방에 룸메이트로 살겠다고 했던 친구가, 그 순간 남자친구를 건너뛰고 예비 남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남자는 오래전부터 내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던 걸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오래 사랑에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연애 상담에 씁쓸한 미소를 넘기고, 남몰래 눈물을 삼켰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결국 말도 안 되는 어떤 작은 계기로 인해 그 사랑을 이루었다. 마음에 두었던 오랜 친구와 연인이 되어 사랑을 나누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가 너무 부러웠다. 반면 연달아 친구 관계마저 망처 버린 내 짝사랑과 고백의 역사가 야속했다.
연애가 끝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1년 간 그 누구의 손도 잡지 않았고, 누구도 안아주지 못했고, 누구도 내게 사랑한다 말해주지 않았다. 홀가분했던 기분은 짧았다. 다시 시리도록 그리웠다. 처음엔 헤어진 여자친구가 그리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연애가 그리웠다. 손 끝을 스치는, 입술이 닿는. 그 느낌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글을 썼다. 보통 글은 가장 마음이 아픈 날에 쓰곤 했다. 그렇게라도 사랑에 대해 말해야 이 외로움이 덜해질 것 같았다. 때론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때론 옛 연인에게 말하듯, 때론 앞으로 내가 사랑할 사람에게 말하듯. 그렇게 말하듯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댓글을 통해서 누군가 슬픔을 말할 때, 나는 짐짓 나는 괜찮은 듯 위로하고 응원했다. 이 시간이 지나갈 거라고. 분명 좋은 사람이 올 거라고. 그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다.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 중요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나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지만, 뱉어야만 하는 그 말들을 쏟아내고, 듣고, 또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이대로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결국 혼자가 되어 외로운 것이 싫어서.
결국 모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아무리 많은 말을 되뇌어도, 결국 누구 하나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오후에 있었던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늘은 한 발작도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모두가 두 사람의 사랑을 축하하는 결혼식이라니, 지금 내겐 너무 잔인했다. 그런데도 안 갈 수가 없는 결혼식이었다. 정말 웃기가 힘들었다. 친구들도 그런 낌새를 알아챘는지, 짐짓 목소리를 높여 자기 연락처 리스트를 보면서 내게 소개시켜 줄 사람을 찾는 척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그중에 내가 만날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집에 돌아와 저녁 내내 그냥 멍하니 앉아서 노래만 무한정 들었다. 재미있게 읽던 소설을 어제 다 읽어버린 게 화근이었다. 그거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딴 데 정신을 팔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연달아 외로움을 자극하는 일이 쏟아진 날에 하필 전적으로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공교롭고도 애처로웠다. 가족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좀 나았을텐데, 이 작은 방에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멍 때리다가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셨다. 그냥, 온몸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이 느낌이 고마웠다.
외로울 땐, 답이 없다.
이렇게 답 없는 글이,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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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