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교과목 중에 다소 흥미 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간표에 H.R이라고 적힌 수업 시간이었는데, 당시에는 H.R이 무엇의 약자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 의미가 Home room을 줄인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정체불명의 이 시간에는 학급 회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장, 부반장, 각 부서 장들이 돌아가며,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다수결 혹은 투표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치 그 시간만큼은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교어린이회의를 매주 목요일에 진행했었던 것 같습니다. 반장이었던 제 절친이 어린이 회장이 되는 바람에, 저는 부반장이었어지만, 매주 참석해서 반장이었던 친구를 대신하여 학급 대표 자리를 지켰고, 반장이었던 제 친구는 전교 어린이 회장으로서 전체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와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꽤나 격식 있고 짜임새 있게 회의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회사부터, 국민의례 등등, 담당 선생님께서도, 성의 있게 모니터 해주시고, 회의 시 보완해야 할 점들을 잘 지도해 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방과 후에 진행되었던 회의라서 하교가 늦어졌었는데, 늦게 끝나더라도, 회장이었던 제 친구와 둘이 같이 집에 갈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생각해 보면, 발언권을 얻는 법, 발언할 때 지켜야 하는 에티켓, 주제에 맞게 이야기하는 법, 발언 시에 잘 들어야 하는 점 등 사회 생활하면서, 회의 시에 알고 있어야 할 많은 부분들을 그 시간을 통해 배웠던 것 같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시간도 아니고, 딱히 해당 교과에 대한 정기적인 시험이 없었음에도, 또한 일주일에 오직 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회의란 무엇이며, 제 의견을 어떻게 개진하고, 흔들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훈련하지 못한 채, 사회로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암기 위주의 교육이었기에, 발표나 의견을 나누고 참여하는 수업보다는 '듣는' 수업이 위주였습니다. 만약 이 수업마저 없었다면, 너무 삭막하고, 수동적인 교육만 받다가 졸업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회의할 때 사용하는 언어는 분명 일상의 대화, 업무 상의 대화와도 다릅니다. 대부분의 회사, 직장에서 주간 회의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금주에 주간 회의를 했습니다. 맡고 있는 업무와 성과에 대해 보고하고, 질문받고 대답을 하며
그 시간을 보낸 후 생각해 보니, 내가 언제 회의에 참여하고, 진행하는 부분에 대해 배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우리가 회의, 다수결, 투표 등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을 해왔던 것임에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교과 과정에는 H.R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보다, 민주주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소통과 설득, 대화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주간 회의 시간이 공포로 다가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상위 직급 분들이 업무를 점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자리에서 모질게 질책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회의, 모여서 의논하는 시간이라는 단어 뜻과 같이, 제가 더 나이를 먹어 '장'이 된다면, 고충을 들어주고 어려움을 의논할 수 있는 그런 회의를 진행하기로 말입니다. 반드시 그런 어른으로 익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