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때, 그 역할 갈등이 바로 이것이구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13화

by 사호

돌이 갓 지난 딸아이는 너무 귀엽습니다. 그러나 마냥 귀여워만 한다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더니, 남편이 되었습니다. 마냥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만 본다고 남편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가면, 연차가 있어서 팀장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팀원과 팀의 업무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내 일만 잘해서도 안됩니다. 조직의 상부와 하부 간에 소통 또한 충분히 진행해야 합니다. 이 와중에 여전히 부모님의 자식으로서의 역할이 존재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님께 '받는' 존재에서 '드리는' 존재로 변해야 합니다.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잘 겪어가는 과정을 두고 '철'이 든다는 표현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양한 역할들이 주어지는데, 때와 장소에 맞게 그 역할을 적당하게 수행해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중학교 때 사회 시간에 배웠던 '역할 갈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내 아! 그 '역할 갈등'이 이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중간고사, 기말고사 문제를 보고, '역할 갈등'이라는 답은 잘만 적어 냈는데, 마음으로 이해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깐의 시간을 아이와 보냅니다. 아내는 제가 그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몇 분이라도 침대에 더 누워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 조절을 잘못해서, 집을 늦게 나서면, 지각을 피하기 위해, 사무실까지 전력 질주하는 일이 많습니다. 고용된 근로자, 회사원으로서의 역할, 가정의 남편, 아빠로서의 역할이 매일 아침마다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면 매일 같이 이런 일들을 겪을 거라고, 학교에서 미리 귀띔을 해준 것일까요? 그러나, 사람은 아는 만큼 경험해 본 만큼 깨닫는 것이기에, 그때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맡은 역할들이 많고, 그들 간에 갈등만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빠'가 되면서 그동안에 알지 못했던 웃는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는 기쁨, 연인이었던 아내가 어느 새 엄마가 되어 아이를 대하는, 그 따뜻한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역할들이 주는 행복일 것입니다. 역할 '갈등' 들이 주는 난감함 뒤에 있는 역할 '행복'들도 함께 찾아보는 것이, 역할 갈등을 잘 다스려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작가' 혹은 '브런치 작가' 로서의 역할을 수행 중입니다. 집에 가면 다시 '아빠'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버스에 앉아 있는 이 퇴근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작가로서의 역할을 다 해갑니다. 언젠가 '작가' 로서 보내는 시간이, '직장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시간보다 더 늘어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