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둘과 이야기 셋
이야기 둘
나는 단 한순간도, 내 서른네 살이 이럴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상상하던 지금은 다정한 남편에게 사랑받으면서 그와 나를 꼭 닮아 한없이 귀여운 아이 한둘은 있고 스물여섯 살쯤 이뤄낸 성공 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발을 넓혀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스물여섯 살은 상상하던 성공을 손에 넣지 못해 안절부절못하였고 결혼은커녕 당시 남자 친구와 막 헤어진 즈음의 스물아홉 12월은 여전히 성공은 못한 채 그저 절망이었다.
실망과 절망으로 점철된 서른 살 1월 이후의 3년은, 어릴 때 환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직업은 있는데 월급이 없고, 몸뚱이는 있는데 집은 없고, 외로움은 있는데 애인은 없고.
더 최악인 건, 서른네 살이라는 나이는 내 지금이 너무 처절한 현실이라고 울 수도, 절망만 할 수도,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으며, 내년에 설령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이미 충분히 늦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저 달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굉장히 지친 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오늘 내가 비참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내 나이가 비참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한 발을 띄어보는 것밖에.
그래도 어쨌든, 앞으로의 남은 내 날들에선 오늘이 가장 어린 날이니까.
이야기 셋
내 인생은 언제나 어중간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꿈은 단 하나 배우였다. 배우와 상관없는 일이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성공이라는 것을 갖지 못한 지금. 단 하나의 꿈만 보며 달려오느라 나이는 경력사원급인데 쌓아둔 경력은 보잘것 없다. 연애라도 열심히 하며 살았지만 무언가를 배울 만큼 좋은 연애를 해본 기억도 없다.
모든 순간에 여러 조건들을 따지고 최대한의 이득을 위한 선택을 했고 그 모든 선택은 최선이었다.
그러나 돌아 생각해보면 그 순간에 최악의 결정처럼 보이던 그것들을 선택하고 잠시 망가질 각오를 하고라도 무작정 덤벼보는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런 선택들 속에서 오히려 무언가를 더 얻지 않았을까.
나는 늘 시간이 없었다. 배우로 시작하기엔 24살이란 나이가 굉장히 많게 느껴졌고, 아직도 성공을 못한 배우로서의 26살은 80 노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24살에 유학을 갈 수도 있었고 26살에 자격증을 딸 수도 있었다. 그 시절에 나는 당장 눈앞에 오디션이 급급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이 하나의 촬영이 급급했다. 나는 그 어리고 좋은 나이에 이미 늙어있었다. 28살에도 그러했고 30살에도 그러했다. 뒤돌아보면 너무도 반짝이고 예쁘던 그 시절들을 그렇게 보내버렸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산다. 그러나 생각보다 시간은 많고 지금 시간을 잠시 낭비하더라도 긴 삶을 생각하면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