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rain Sep 27. 2016

외로움이 만들어낸 설렘과 그 비참함에 대하여

비참함 하나


삼십 대의 하루하루가 더해갈수록 마음에 강렬히 남는 명언들을 수도 없이 남기신 모두의  언니, 김삼순 언니가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다.

나 좋다는 남자 만나서 마음 안 다치게

참 오래간만에 설레면서 헷갈렸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해서 설레는가, 외로워서 설레는가, 이 사람이 좋은 건가, 옆에 있어서 좋은 건가.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면 ‘아 이 사람이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보다 ‘이 마음도 언젠가는 변하겠지.’를 먼저 생각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순간의 감정이라는 걸 너무 알아버린 삼십 대의 설렘이란 그렇게 헷갈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 사람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내 마음은 무엇인가. 확인하고 정리하고 싶었다.

그와 연락을 할 수 없는 며칠간 그렇게 잠을 못 자고 혼자 고민하고 그를 떠올렸다. 혼자 기다렸다가 보고 싶었다가 정리했다가. 그러다 의도치 않게 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그를 좋아한 게 아니라 그저 설레었던 거구나. 그게 그리웠던 거구나 확실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설레고 착각한 게 한없이 창피했다.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속상함보단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 나이 먹고 그렇게 쉽게 흔들리고 설레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사람이 정말 많이 부끄럽고 창피하면,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픈데 절대 울 수는 없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렇게 부끄러워 아픈 마음을 안고 삼순 언니의 말을 떠올렸다. 


서른 살이 되면 그럴 줄 알았어. 나 좋다는 사람 만나서 마음 안 다치고 안정적으로. 그렇게 겪고도 이걸 또 하는 내가 너무 끔찍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비참함 둘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보다도, 그보다도 어린 스물여섯 살의 예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그저 내가 너무 비참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같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내 나이가 제일 비참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게 비참한 게 아니라 그 모든 이유가 내 나이 때문인 것 같아서 비참했다. 어릴 땐 그럴 수 있지, 그 사람이 더 좋은가 보다 하며 슬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매력이 없나 보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인 게 너무 비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나 너를 좋아해.’라는 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구나. ‘네가 안 좋아해도 나는 너를 좋아해.’ 그런 진짜 좋아한다는 고백.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내 곁에는 조심하는 사람들뿐, 내가 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진전이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뿐. 그게 제일 비참했다. 
나도 저런 고백을 듣던 나이가 있었는데, 저 아이가 받은 것 같은 그런 고백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고백을 받던 스물여섯 살이 내게도 있었는데, 생각하게 되는 내가 너무 비참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다 거짓말이다. 나이는 나를 옭아매는 가장 큰 사슬이다. 현실이 그렇다. 숫자와 상관없이 살면 동안은 얻어지는데 그것뿐이다. 


그래. 사실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내가 이렇게도 숫자에 메여있다는 사실이 가장 쪽팔리고 비참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가장 어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