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함 하나
삼십 대의 하루하루가 더해갈수록 마음에 강렬히 남는 명언들을 수도 없이 남기신 모두의 언니, 김삼순 언니가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다.
나 좋다는 남자 만나서 마음 안 다치게
참 오래간만에 설레면서 헷갈렸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해서 설레는가, 외로워서 설레는가, 이 사람이 좋은 건가, 옆에 있어서 좋은 건가.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면 ‘아 이 사람이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보다 ‘이 마음도 언젠가는 변하겠지.’를 먼저 생각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순간의 감정이라는 걸 너무 알아버린 삼십 대의 설렘이란 그렇게 헷갈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 사람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내 마음은 무엇인가. 확인하고 정리하고 싶었다.
그와 연락을 할 수 없는 며칠간 그렇게 잠을 못 자고 혼자 고민하고 그를 떠올렸다. 혼자 기다렸다가 보고 싶었다가 정리했다가. 그러다 의도치 않게 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그를 좋아한 게 아니라 그저 설레었던 거구나. 그게 그리웠던 거구나 확실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설레고 착각한 게 한없이 창피했다.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속상함보단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 나이 먹고 그렇게 쉽게 흔들리고 설레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사람이 정말 많이 부끄럽고 창피하면,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픈데 절대 울 수는 없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렇게 부끄러워 아픈 마음을 안고 삼순 언니의 말을 떠올렸다.
서른 살이 되면 그럴 줄 알았어. 나 좋다는 사람 만나서 마음 안 다치고 안정적으로. 그렇게 겪고도 이걸 또 하는 내가 너무 끔찍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비참함 둘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보다도, 그보다도 어린 스물여섯 살의 예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그저 내가 너무 비참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같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내 나이가 제일 비참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게 비참한 게 아니라 그 모든 이유가 내 나이 때문인 것 같아서 비참했다. 어릴 땐 그럴 수 있지, 그 사람이 더 좋은가 보다 하며 슬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매력이 없나 보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인 게 너무 비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나 너를 좋아해.’라는 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구나. ‘네가 안 좋아해도 나는 너를 좋아해.’ 그런 진짜 좋아한다는 고백.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내 곁에는 조심하는 사람들뿐, 내가 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진전이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뿐. 그게 제일 비참했다.
나도 저런 고백을 듣던 나이가 있었는데, 저 아이가 받은 것 같은 그런 고백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고백을 받던 스물여섯 살이 내게도 있었는데, 생각하게 되는 내가 너무 비참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다 거짓말이다. 나이는 나를 옭아매는 가장 큰 사슬이다. 현실이 그렇다. 숫자와 상관없이 살면 동안은 얻어지는데 그것뿐이다.
그래. 사실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내가 이렇게도 숫자에 메여있다는 사실이 가장 쪽팔리고 비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