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엔 식어가는 철로만이 기다리고
대해를 그린 눈 앞엔 썰물의 땅이 나를 반기네
그 마저도 얼어붙어 고개를 내미는 이가 없으니
감정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면
저 갯벌의 표면처럼 꺼끌 거리겠지
어딘가로 피신하고자 찾은 곳인데
당신은 무명의 간이역에서조차
역무원의 목소리로 집찰을 요구하네
비우기 위해 왔으니
눈을 감고서라도 지나가야 할 것 같은데
설익은 시간이 억겁의 길이로
천근의 무게로 짓눌러
그 매서운 눈길조차 피할 수가 없네
밀물은 야속히도 퇴로를 끊고
차표마저 분실한 나는
곱디고와 살을 에는 당신의 호령에
해무가 되어 창틀 너머로 나부끼네
한 겨울 망망대해에 파종되어
모이가 되지 못하고
발아하지 못하고
<집찰集札>, 이대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