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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Jun 06. 2016

세계의 침묵안

단편소설

  

    방 안의 모든 창문을 닫았음에도 여전히 일정량 이상의 소음이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고, 때문인지 이미 내 내면 어딘가에서는 그의 이론을 기정 사실화하고 싶다는 욕구가 점차 강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교도소에 잠시 수감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내가 입소한 뒤 두 달쯤 지나서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수감자 개개인이 모두 인상적이었음에도 그만이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그만의 독특한 이론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수감자들은 모두 개인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무기징역을 판결받은 살인자도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고 했으니 그 누군들 없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그의 사유는 독특했다. 그는 지독한 고요를 추구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음에 대한 완벽한 차단. 그는 그것을 꿈꾸었고, 실패하였으며 그래서 수감되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도 고요이며, 가장 값비싼 것도 고요였다. 자신이 원하는 공간만큼을 최고급 방음벽으로 에워쌀 돈이 부족했던 그는 대신 고요함을 찾아 산과 바다, 동굴, 사막까지 세계를 떠돌아다녔지만 그 어느 곳도 그가 원하는 수준을 제공해주진 못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이 평생토록 벌어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재화를 보유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고요 역시 평생토록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다되었는지 직장인들이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소리, 자동차 타이어가 도로를 헤집는 소리 그리고 옆 방 청년의 암울한 한숨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물론 애당초 그처럼 완벽한 고요를 바라며 찾은 곳이 아닌, 주머니의 돈을 털어 들어온 고시원이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럼에도 세계는 지독히도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나는 새삼스레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쩐지 전에 없던 불편한 세계로 들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눈을 감고 그가 걸었을 숲길과, 해안가 그리고 동굴과 사막을 그려보았다. 숲에서는 새를 필두로 한 동물과 식물들의 소음이 들려왔고, 해안가에서는 플랑크톤을 잔뜩 실은 파도가 요동쳤으며, 동굴에서는 대장장이가 정성스레 손보는 듯한 석순의 생성과정이 메아리쳤다. 

   다만 사막만큼은 이따금씩 불어오는 모래폭풍 이외에는 그 어떤 소음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언젠가 나 역시 그에게 당신이 찾던 완벽한 무소음의 공간이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외로 간단했다. 

'살 수 없으니까.' 

   그가 우주로 나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였던 것이다. 물론,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했겠지만 그의 고요한 인생관의 핵심은 고요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 아닌, 고요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 했다는 것이었다.


   고요함을 찾아 간수까지 기절시키고 들어간 독방조차도 완벽한 고요의 공간이 아니더라며 씁쓸히 웃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던 그가 그토록 고요를 염원한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그는 왜 그렇게 광적으로 고요를 찾아 헤매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재밌게도 그러한 추측은 곧 나로 하여금 그의 심정까지 몰입되게 만들었고, 때문에 나는 곧 그가 바라는 '완전한 고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결론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할수록 선택의 폭이 확연히 줄어드는 문제였다. 돈이 없다면 원하는 반경 안의 소음을 내는 모든 생물체를 제거하며 살아가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 대답은 나 스스로에게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바깥에서는 누군가 급정거라도 했는지 지독한 클락션 소음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계획의 현실성과 결과물을 그리며 동시에 그와, 그의 출소일과 그리고 그의 죄명을 떠올렸다. 그의 죄명은 살인미수였다. 고요 탐색을 실패하고 귀국한 날, 때마침 공항에서 지독한 소음을 내며 통화하는 옆사람의 목소리를 참지 못하고 유리병으로 내려친 뒤에 그대로 복부를 몇 차례 찔렀다는 것이었다.


클락션 소리는 여전히, 지독할 정도로 오래 울리고 있었고, 그에 짜증이난 듯 옆방 청년의 한숨소리도 올라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두세 번은 불러야 대답할 정도로 자주 깊은 고민에 빠져들곤 했다. 무엇을 그렇게 고민했던 걸까. 그 뒤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장면들 역시 그의 신중한 측면을 각인시키는 모습들 뿐이었다. 간수를 폭행했던 사건 역시 단 하루의 형량조차 늘어나지 않았으니까.


사고가 난 것인지 이제 바깥에서는 사이렌 소음까지 들려왔고, 옆 방 청년의 구시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드르륵 거리며 창문을 여는 소음이 들려왔다.


나는 그가 침묵의 세계를 건설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내 내면은 이미 그가 건설할 침묵의 세계를 상상하고 있었다. 사이렌도, 클락션도, 옆 방 한숨도 들리지 않는.


사고를 두고 싸움이 번졌는지 언성이 높아진 욕지거리가 울리고, 옆 방에서는 책상을 내리친다.


불협화음이 정점에 다다르고, 나는 서둘러 옷가지 몇 개를 챙긴 뒤 밖으로 나선다. 침묵의 세계를 그리기에 이곳은 지독히도 시끄러운 곳이어서 직접 그려진 도안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계의 침묵안. 그가 속삭일 세계의 침묵안을.





그림출처 : 슈프림팀 <Ames Room> 앨범 자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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