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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May 06. 2016

세계수

한 장 소설


   나는 세계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광활한 가지가 세상을 덮고 세 갈래로 갈라진 뿌리는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와 인간계 미드가르드 그리고 명부로 이어져있다고 알려진. 예, 바로 그 나무를 찾는 사람입니다. 


   그래, 장난은 여기까지 하자. 이쯤이면 벌써 내가 누구인지 너는 눈치챘을 테니까. 오랜만이야 정하. 잘 지냈니? 네가 떠난 지 정확히 3년째 되는 날이야. 너는 아마 잊고 있었겠지만. 언젠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너는 관심도 없을 텐데 왜 나는 네가 떠난 하루하루를 세고 있는지 말이야. 그걸 설명하기 위해선 상투적임에도 이 말을 먼저 적어야겠지. 

   정하, 난 아직도 너와 함께하던 날들이 어제였던 것만 같다. 그 증거라기엔 뭐하지만, 어쨌든 너와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까지 난 아직도 모든 게 생생히 기억이 나니까. 그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탈리아 돌로미티케 산맥을 탐색하고 있었고 너는 마침 그곳에 들른 여행객이었지. 여행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마을을 좋아하던 너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나를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먼저 살갑게 다가와 활짝 웃어주었어. 그래,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어쩌면 나는 그 미소를 본 순간부터 네게 반한 건지도 모르겠어.

   너는 내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지. 나는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모든 곳에 갈 거라고 대답했고, 너는 조금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어. 나는 네게 세계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나는 알아. 너의 표정으로 봤을 때 당시의 너는 내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너는... 내가 뭔가 추상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어. 나의 세계수 탐색을 마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 같은 것을 찾는다고 이해한 듯 말이야. 뭔가 네가 오해한 것 같다는 이런 생각을 당시에도 했지만 어차피 너와는 스쳐갈 인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딱히 뭔가를 더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었어.

   이유야 어찌 됐든, 너는 내가 가기로 한 곳이 더 재밌겠다며 동행을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허락했지. 사실 세계수를 찾는다는 것이 뭔가 거창해 보여도 결국엔 한 눈에 띌 정도로 거 대한 나무를 찾는 것뿐이기에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하이킹 코스를 걷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으니까. 다만 조금 더 거칠고, 위험하고 깊숙할 뿐이었지. 

   해가 뜨고 지기까지 계속된 산행에 나는 네가 지칠 거라 생각했었지만 너는 오히려 굉장히 행복해했어. ‘이제야 자신만의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고 했었지 아마. 그래,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해는 졌지만 내 세상만은 환하게 밝히던 그 미소.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에 나는 너를 그저 스쳐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동안 나와 동행했던 사람이 너 하나만은 아니었고, 그들 모두 다음 날이면 나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지.

   그래, 그렇게 너와 나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어. 돌로미티케로부터 시작해서 중부 알프스 지방까지 장작 6개월에 걸쳐 나는 세계수를, 너는 너만의 여행을 찾아 같이 걸었지. 내가 네게 반했던 것은 그 과정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는 네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네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리기산 중턱에서 너 몰래 조금씩 꺾어온 에델바이스를 건네며 고백을 하게 되었지. 몇 번에 걸쳐 화장실 가는 척 몰래 에델바이스를 찾던 내게 그 전날 자신의 파스타를 훔쳐 먹어 벌 받는 거라고 놀리던 네 모습이 떠오르네. 그래, 어쨌든 그 뒤로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었지. 적어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


   우리의 관계처럼 대화도 깊어지기 시작하면서 너는 나의 세계수 탐색이 진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난 처음엔 네가 왜 그것에 대해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지. 난 우리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동상이몽. 어느새 우린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을 꾸게 된 거지. 그 후로 너는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굉장히 사소한 것들로 꼬투리를 잡고 화를 내기 시작했어. 가령 나무가 보이지 않는 좀 더 대중적이고 여행자들에게 인기 많은 길만을 고집한다던가, 산에서의 식사 등을 진저리 치며 거부하는 것들처럼 말이야. 

   우린 가까워지는 데는 오래 걸렸지만 멀어지는 데는 그렇지 않았어.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일정을 설명하던 내게 너는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나는 놀랐지만 그렇게 당황하진 않았던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너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너와 헤어진 후 난 너와의 만남이 특이했을지언정 특별하진 않았다고 수 없이 되뇌었어. 그래서인지 이별이 의외로 많이 아프진 않았지.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 오류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어. 먼저 혼자 걷는 발소리가 어색해졌지. 밥은 계속 양이 넘쳤고, 혼자 자는 텐트가 광활하게 느껴졌어. 언덕 하나만 넘으면 네가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고 너를 생각하느라 나무를 놓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래, 어느새 나는 세계수가 아닌 너를 찾고 있었어.

   정말 더 이상 너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쯤 나는 핀란드에 도착했어. 세계수 신화의 기원이자 내 최종 목적지 말이야. 너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로 나는 반쯤 미쳐있었지만, 내 숙원을 포기할 순 없었어. 그렇게 그 날부터 약 1년간 나는 하루의 반은 나무를, 나머지 반은 너를 찾으며 원시림을 떠돌았지.


   이 모든 게 약 일주일 전까지의 일이야. 지금 나는 헬싱키에 잠시 머물고 있어. 자, 네가 이 편지를 도중에 찢어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래도 이쯤에서는 네 안의 작은 호기심이라도 일렁이길 기대하고 싶네. 한 번 맞춰볼래? 내가 세계수를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 정답은... 네가 무엇을 선택했든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아직 세계수를 반은 찾고 반은 찾지 못했으니까.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세계수를 찾지 못했어. 하지만 세계수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한 위치를 알게 되었지. 그래서 지금은 그곳으로 가려고 내일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야.

   네 궁금증이 조금 더 지속되길 바라며 세계수의 위치를 알게 된 과정을 얘기해보자면, 얼마 전의 일이었어. 원시림의 생활이 1년을 채워가던 날이었지. 네 목소리의 환청에 반쯤 미쳐가던 걸로도 모잘라 사람과 맹수 모두를 피해 다녀야 했던 나는 결국 아무리 찾아도 세계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하고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았어. 나름의 경험을 통해 몸이 정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나였지만 그건 조금 특별한 경험이었어. 평생의 숙원을 포기하게 된 순간 정말 내 몸엔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도 없었지. 결국 나는 그대로 쓰러졌어. 그거 알아? 그 넘어지는 짧은 순간에도 아프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흙이 너무 편안하게 느껴지더라. 정신력으로 버텼던 지난 여행들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거지.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게 싫지 않았어. 오히려 그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꿈을 꾸었어. 늘 지난 꿈은 떠오르지 않듯 나 역시 무슨 꿈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하나 확실한 건 네가 등장했단 거였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했던 꿈이었나 봐. 정신이 들었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진 않았으니까. 


   다시 깨어났을 때는 어느 산장 안이었어. 아마 그대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운 좋게도 근처에서 원시림 다큐멘터리를 찍던 촬영팀이 나를 발견해서 구조될 수 있었다고 산장 주인이 전해줬지. 당시에는 뭐가 운이 좋은 거냐고, 왜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냐고 애꿎은 그에게 화를 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말대로 내가 산장으로 구조된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어. 바로 그곳에서 내게 세계수의 위치를 알려준 소녀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루네는 그 산장 주인의 딸이었어. 산장에서 지낸지 나흘쯤 되었을 때 죽고 싶다는 내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몸은 거의 완벽하게 기력을 되찾았고 곧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 하루는 그동안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산장 밖으로 나섰는데 마침 그녀가 죽은 여우 한 마리를 묻고 있었어. 내가 묻자 루네는 자신을 잘 따르던 야생여우라고 알려줬지. 나는 그녀를 도와주었어. 그렇게 내가 여우를 다 묻어갈 때였지. 그녀가 어디서 자신의 키만 한 어린나무를 가져오더니 그것을 방금 여우를 묻은 곳에 심어달라고 부탁했어. 내가 되묻자 그녀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라며 그리하면 나무가 여우를 영양분으로 삼아 자라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여우가 나무로써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길이 될 거라고 말했어.

   나는 이미 거기서 충분히 놀랐지만 내가 나무를 다 심은 뒤 그녀가 마지막으로 여우의 이름을 부른 순간엔 온몸이 떨릴 정도의 전율이 일었어. 


이그드라실 

그래, 내가 그토록 찾던 세계수의 이름을 말이야.


   그 길로 나는 산장을 뛰쳐나와 허겁지겁 이곳으로 왔어. 세계수가 어디선가 가만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그게 나의 가장 큰 오류였다는 걸 깨달은 거지. 그래,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놓치고 있었던 거야. 

   물론 루네의 이그드라실과는 조금 다른 것을 묻어야겠지. 그건 그녀만의 세계수니까. 대신 나는 나의 세계를 묻기로 했다. 들어봐, 나의 세계를 영양소로 자라난 나무가 곧 나만의 세계수가 되는 거야 오딘의 이그드라실이 있고, 루네의 이그드라실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나의 세계? 그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 내 세상에 남은 것은 너 하나뿐이니까.


   정하, 나의 세계. 나는 지금 네게로 가며 이 편지를 부친다. 무엇이 먼저 일진 모르겠지만 만약 네가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내가 그토록 찾던 세계수를 찾게 되었음에 같이 기뻐해 주길. 그리고 우리 함께하던 그 날처럼 내 곁에, 이번엔 영원히 있어주길.







사진출처 : World Tree by  Alexander Faol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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