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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Oct 31. 2016

"저 좀 더 놀고 싶은데요."

2년 간의 세계 여행, 그 이후 소심하게 외치는 백수의 속마음 








왜 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들은 쌍그리 무시하고) 나하고 싶은대로만 살려고 할까. 


여행을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를 반긴 건 꽤나 묵직한 무기력증이었다.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기분,이 이따금 나를 찾아왔다. 여행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자랐다며 스스로를 제법 뿌듯해했지만, 그도 잠깐. 내가 자아 발전을 하겠다며 여태 모은 돈을 바다너머에서 흩뿌리는 사이, 친구들은 대부분 승진과 결혼을 통해 한국이란 사회에 '완벽적응' 해 있었다. 자나 깨나 '탈한국'을 꿈꾸며 살아온 나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글을 쓰고 싶어! 라며 '하루에 글 하나 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 나와, 한때 친했으나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대출을 하고, 집을 사고, 회사일을 이야기하며 어른으로 성장한 친구들은 현실이라는 선을 긋고 서로 다른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존재 같았다. 


'나 너무 비현실 적이야?' 스스로 질문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고 있다고, 힘들더라도 뚝심 있게 한번 해보겠다고 맘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토종 한국인으로 자란 내 본성은 다시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재단하고 있었다. 한국의 뻑뻑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하루하루 마음이 답답해졌다. 결혼할 남자도 없는데 이미 늦었다며 결혼을 해야한다는 엄마나, 앞으로 무얼 할 거냐며 물어오는 지인들의 시선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실은 그들에게 "저 좀 더 놀고 싶은데요." "논 걸로 글 쓰고 싶어요" 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놀아서 잘 될 거라는 확신이 내 안에 없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렇게 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이 사회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정녕 결혼과 취직 뿐이란 말인가, 한탄하면서 채용공고를 살폈다. 채용 기준도 무척이나 까다로웠지만 입사한대도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그 순간 똑같은 걱정을 한 적 있다는 기시감이 머리를 때렸다. 



도돌이표. 생각해보니 세계여행을 떠난 것도 그 이유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살아야 하나? 꼬박꼬박 모은 피같은 여행자금을 결혼자금으로 탈바꿈해야 이 사회의 소속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나? 나 살고 싶은대로 좀 살면 진짜 쫌!!! 안되나? 분명히 자기 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스무살엔 대학에 가고 서른살엔 결혼을 하는 정해진 순서를 지키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텐데 라며 모은 월급 모두 움켜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다. 


이런. 하하하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고 와서도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서른 일곱인데 결혼 생각은 1도 없는 닉, 그런 아들에게 결혼하라고 압박하지 않는 그의 부모님, 호주 물가는 너무 비싸다며 1인 창업 후 태국으로 이사해 갓 지은 수영장 딸린 콘도에 살며 그 전과 똑같은 돈을 버는 제시, 아들 집이건만! 노크 안하고 들어와서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며 열번도 넘게 사과하는 남자친구 어머니, 스무살도 넘는 나이차임에도 만날 때마다 깨가 쏟아지는 제닌커플, 2년 째 자기 나라를 떠나 함께 여행하며 같이 사는 (나보다 어린) 제임스 커플 까지. 


나이 먹으면 결혼을 해야지. 여자가 남자랑 동거 하면 그건 큰 흉이다. 어떻게든 열심히 돈 벌어서 집을 사야지. 자식은 아무리 커도 내 자식이지. 등등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기준들이 박살나는 '와장창' 소리도 들었으면서 그리고서 허탈한 기분마저 느꼈으면서 어쩜 나는 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깨달았다. 한국의 중력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는 걸. 그러니 앞으로도 쭉 같은 고민으로 방황할 거 라는 걸. 하지만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란 걸 또 인정하고 받아 들일 거란 걸.  



인간은 방황한다. 방황하는 한 발전한다.

그러니 이기적인 나는 소리쳐 말한다. "저 좀만 더 놀래요."

노는 것도 기깔나게 재미있게 놀아서 그렇게 사람 노릇도 해볼게요. 







PS. 그런 의미로 낼 모레 다시 하와이에 갑니다. 엄마가 화가 나셨어요. 그러니 이번엔 정말 원없이 놀고! 다녀와서는 제대로 한국에서도 적응해보자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방랑을 유지가능 하도록!



사랑하는 엄마, 이제 딸을 조금 놔버리면 안될까? 스스로 행복해 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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