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탓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기뻤다. 의사는 삼 년 전에 비해 깡마른 모습이었다. 말투도 좀 더 세졌고, 막말에 가까운 말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 순간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땐 아이에게 조용한 ADHD라고 진단했었는데 갑자기 다른 진단을 내린 것이다. 아이는 문제가 없다고.
의사는 학력에 대한 낮은 자존감이 시부모님과 갈등으로 이어졌고 내가 아이를 대하는데 더욱 엄격해진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지난번 상담기록에 있던 시부모님의 "똥통학교" 발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렇다. 시부모님 눈에 나는 부족한 며느리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우린 소개팅에서 만났다. 주선자는 나의 대학 동아리 선배였다. 소개팅을 해달라고 졸라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말을 할 때 한없이 가볍고 농담 식 무례한 대화를 툭툭 던지는 낯설고 이상한 사람이었다. 진중하지 못한 대화 속에 그 사람의 부모님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적 게임기를 갖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성경의 '사랑장'을 다 외우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하셨다고. 그래서 며칠 만에 다 외워서 게임기를 샀다는 이야기.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였다. 성경의 많은 구절 중에 사랑장이라니. 정말 멋진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구나.
백일만에 그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일 년의 열애 끝에 우리는 결혼했다. 중간중간 싸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는 내 배우자 기도에 적어둔 이상형과 매우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이 분명해 보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우리의 신혼집에 놀라온 시부모님과 남편의 여동생. 함께 근처 돼지갈비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상견례 이후 이렇게 같이 밥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반찬이 나오고 고기가 나왔다.
"근데 너는 왜 그런 똥통학교를 나왔냐?"
시아버지가 느닷없이 질문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남편은 Y대 공대를 졸업한 수재였다. 문제는 남편의 여동생이었는데 그녀는 나와 같은 K대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아 속을 썩였다고 했다. 나름 명문대였지만 시부모님 머릿속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였나 보다. 시험기간에도 교과서가 아닌 소설책을 읽는 등 공부 하나 하지 않고 대학을 쉽게 가는 천재 자식을 두신 것은 대단하나 왜 남 아니 며느리가 졸업한 학교를 저급하게 칭하는가. 불쾌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착하고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그냥 저는 열심히 해서 들어간 학교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또 몇 년이 흘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수학을 어려워했다. 시부모님과 식사자리에서 남편이 아이가 수학을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머님은 바로 나를 쳐다보며
"너 수학 못했니? 우리 집에는 수학 못하는 사람 없는데"
그때 왜 제대로 대답을 못했을까. 실제로 나는 수학에서 제일 애들 먹었다. 하지만 못하지는 않았다. 당당하게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점수는 아니었지만.
낯부끄러움, 모멸감. 남편은 옆에 있었지만 시부모님한테서 내가 공격을 받을 때 보호해 주지 못했다. 동조하거나 방관했다. 따로 남편에게 서운함을 토로했을 때 “사실이잖아 “라는 차가운 말만 돌아왔다.
의사는 학력에 대한 낮은 자존감이 시부모님과 갈등으로 이어졌고 내가 아이를 대하는데 더욱 엄격해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학력이 낮지 않다고 했다. 학교도 전공도 결혼할때 재직 중인 회사도 남편에게 꿀릴만한 조건은 아니었다. 난 당시 국내 최고의 IT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퇴사 후 몇 년이 지나 그 회사는 대학생이 가고 싶은 회사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좋은회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남편과 같은 또는 더 좋은 학교를 다녔으리라 으레 짐작하셨을까.
원래가 낮은 자존감과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은데, 그 상황에서 시부모님의 말과 행동은 나를 더 낮아지고 초라하게 했다. 시부모님의 말이 상처가 되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조금 느린 아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곱지 않았으리라.
아이에게 엄격해질수록, 아이의 단점은 더 크게 보였다. 나를 닮아서 그런가? 문제가 있는가? 아이의 단점은 어떻게 해서든 없애고 싶었다. 느리고 굼뜬, 부주의한 실수가 잦은 아이가 싫었다. 나를 닮은.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듯했다.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더 화가 났다.
그래도 아이가 아닌 내 문제라는 말이 감사했다. 내가 달라지면 아이도 달라지겠구나. 내 문제여서 다행이다. 아이도 나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엄마가 아이를 문제 있다는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크는 것 같다. 내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 챙겨봐 주고, 찾아주고, 일깨워 주는 것이 엄마의 몫이다. 아이를 질타하고 몰아치기보다는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지지해 주자. 아이의 부족한 점은 흐린 눈으로 잘하는 건 집중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