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조금만 더, 때로는 조금만 덜~
#2. "관심"의 힘!
by goodthings Jun 12. 2023
호주에 방문해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의 자외선 수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인지 피부암 발병률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고, 각종매체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선크림을 꼭 바르고 야외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에 강조를 한다.
더군다나 이곳 사람들은 자전거 타기, 산책 같은 밖에서 하는 활동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밤만 아니면 이곳저곳에 사람이 즐비하다.
워낙 강렬한 햇빛이라서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비가 오는 때를 제외하고는 걸어서 출근하는 것을 선호한다.
직업 특성상 아무래도 서있는 시간이 많아서 하체운동과 허리 보강 운동이 필요한데,
1시간 남짓 걷는 것을 수년째 해보니 나에게는 이만큼 좋은 운동이 없는 것 같고
허리통증도 상당히 좋아져서 계속해나가고 있다.
게다가, 버리는 시간 없이 내가 가야 할 곳까지 걸어가는 것 자체가 운동이 되는 것이니
효율성 자체도 최고로 경제의 원리처럼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 랑 마찬가지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공원을 지나서 일터로 향했다.
오늘 하루만 보내면 내일은 휴일이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키가 약 150cm 도 체 안 되어 보이는데, 옷은 그 나이 또래에 입는 옷과는 전혀 다른 옷차림새의
중년남자가 나를 지나치면서 “Glasses off”라고 아주 또렷하게 들리도록 이야기를 했다.
몇 걸음 더 걷다 보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나의 뇌에서 자동으로
“그냥 무시해”라는 신호를 보냈는지 두 다리는 열심히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민사회에서는 탐탁지 않지만, 동양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음! 아마도 그냥 피해의식이 뼛속까지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럴 거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최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정유정 사건”을 보면,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만 똘똘 뭉쳐진 한 사람이 “괴물, 즉 사회악 같은 존재” 가 될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 한다.
만약에 과거에 피의자에게 한 사람이라도 다가가서 “관심”이라는 것을 보였다면
이러한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끔찍한 범죄의 피의자들 중 상당수는 “볼품없는 외모, 작은 키, 너무 조용한 성격, 의기소침 등” 으로
과연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을까 라는 물음표를 우리들에게 남긴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면서 원인이 되는 것은 “주변환경”인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예쁜 것, 깨끗한 것 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고, 무엇인가 다른 것들을 기피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나에게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 플러스알파가 함께 해야만
“만족감”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당연히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고, 거기에 외모는 평균미달, 그런데 자신감까지 바닥이라면
“왕따” 당할 수밖에 없는 최적이 요건의 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사에서 나온 몇몇 프로파일러들의 말들을 인용하면,
“누군가의 무관심”이라는 것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전적으로 상대방의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살아간 아이들은 “운둔형 외톨이”로 사회 적응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언어 구사력 자체도 대화상대가 있어야 늘어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데,
이것조차 철저히 막혀있기에 성장해 가면서 ,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피해의식뿐이다.
학창 시절 때 그 선생님이 조금 나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 내가 이렇지 않았을 텐데….부터
시작으로 모든 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려가면서 생각하기를 매일 같이 반복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증오심이 생겨나고 결국에는 범행계획까지 하는 있어서는
안 돼야 할 상황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 만들기"는 세상 민주주의 어느 나라에서도
꼭, 이루어 내고자 하는 목표 중에 하나이다.
나부터 생각해 보면, 과연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밖으로만 돌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냥 피하기만 했는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후자이다.
혹시 나에게 어떤 악영향이 있을까, 다가서기는 커녕 못 본 척한 적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싶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고,
사회에 혼자 던져진 느낌, 누군가의 관심을 받으려면 돌발행동 이것 만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에 한도 끝도 없이 빠지는 것이다.
“Glasses off”라고 말할 때 “제 뭐래. 초딩키에 생긴 것도 저러면서. 남일에 뭔 상관” 이런 표정과 함께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웃고 지나갈걸.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었는데…
살아가면서 체득되어 가는 것인데 지나 보면 어떤 일이던지 “최적의 시간 (골든타임)” 이 있는 것 같다.
골든타임은 의학분야나 사건 사고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데, 그 시간 안에 어떠한 조치가 있을 경우에는
최악의 상태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분 1초를 앞다투어서 최선을 다 할 경우에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관계에서도 골든타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왕따”, “이즈매”, “불링” 모두 어원은 다르지만 같은 말이다. 절대 이사회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환경,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생김새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라서 어떠한 성형시술이 있지 않는 이상 바뀔 수가 없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음 씀씀이" 그것 만큼은 “사회생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처: 월간중앙 (중앙포토)세상이 “외모지상주의”를 필두로 앞세워서 모두들의 워나비가 우리들이 흔히 보는
티브이 속에 인물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여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 같은 것도 하는 것이다.
요즘 같이 폭등되는 물가에 어려운 주머니 사정을 보면 ,
넉넉지 못한 사람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은 상황인 요즘이기에 , 각각 나라에서의
국정운영이 아주 중요한 시기인 때이다.
나부터가 주변 좀 돌아보고 , 나누고 , 관심을 가진다면 좀 더 좋은 일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남들이 회피한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덩달아서 같은 행동을 하지 말고, 좀 더 큰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관심"과 "사랑"이 함께한다면...
관심은 조금만 더, 회피하는 것은 조금만 덜!
브리즈번 강가다리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