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어떤’ 죄인가?

political life story

by 이인미

죄와 벌


지난해(2019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낙태를 형법상 범죄로 다루는 일이 헌법과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법불합치는 법개정을 유도하게 된다. 이제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지정한 대로) 2020년 연말까지 관련 법조항을 헌법정신에 맞춰 개정하여야 한다.


올해 4월, 여당에 거의 몰표를 주어 구성된 ‘제21대 국회,’ 할 일이 정말정말 많다. 낙태죄 법안도 그중 하나다. ‘입법’을 다루는 국회는 원래 이렇게 일이 많은 법! (그러니 입씨름 좀 그만하고 입법에 충실하길 바란다.)


낙태죄는 현행 ‘형법 제27장’에 명시돼있다. 낙태죄를 ‘저지르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낙태를 한 자는 물론, 낙태를 도운 자도 마찬가지로 벌을 받는다. 낙태를 도운 자의 경우 구체적 사안에 따라 형량이 더 내려가거나 올라갈 수 있다.


단, 모든 낙태(다른 말로, 인공임신중절)가 다 범죄인 것은 아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참조된다.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 즉 형법상 죄가 되지 않는 경우는 아래 다섯 가지로 분류되어있다.


①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②전염성 질환
③강간(준강간) 임신
④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⑤모체의 건강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임신

* 참고로, 모자보건법은, 나치즘의 ‘단종법(Prevention of Progeny with Hereditary Diseases Act, 1933)’에 영향을 받아 1940년 만들어진 일제 ‘국민우생법’을 모체로 한다.



앗! 나치즘이라굽쇼? 히틀러와 독일의 그 전체주의??



http://www.chsc.or.kr/?post_type=column&p=90059




모체의 건강(신체&정신)


내 친구들 중엔 임신기간이 거의 투병기간에 맞먹는 경우도 적잖이 있었다. 임신은 여성의 신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데, 사람에 따라 질환을 앓는 것만큼 악화되는 사례도 있다.


사실 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이라는 ⑤에 대해서는, 임신한 당사자와 의사,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의논하여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21세기는 조선시대가 아니기에) 대체로는 임신 당사자의 생각이 제일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 어떤 엄마는 자신의 신체건강이 심하게 악화될지라도 임신을 유지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 어떤 엄마는 그 반대일 수 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여성의 경우 임신상태의 지속은 무리가 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통증에 대한 대처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제법 큰 통증인데도 잘 참고,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통증일지라도 못 참는다(나는 이쪽인 듯하다. ^^;;). 의사들조차 확고히 예언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하긴 이건 예언의 영역이라 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Case by Case’다.


그리고 모체의 건강이란 항목에는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도 포함될(되어야 할) 것이다. 모체의 건강을 이유로 임신중절을 고려하는 한, 최종결정권은 어차피 산모에게 있다. 어떤 임신의 경우, 태아의 생명은 모체의 생명에 대하여,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대립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모로 따져볼 때 어떤 임신은 어떤 여성의 신체건강이나 정신건강에 유해(?)할 수 있다. 태아가 결코 의도한 게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안타까운 일이지만, 낙태는, 낙태가 범죄행위인 현 시점에서도, 모체의 건강상태를 두루 고려한 결정으로 유익할 수 있다. 이 지점을 우리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즉 낙태는 임신한 여성의 건강상태를 충분히 참작하는 게 옳다는 이야기다.





죄와 죄의식


지난해 발표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낙태가 형법상 유죄(guilt)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준 것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낙태를 아예 문제삼지 말라는 선언이 아니다. 죄가 아니니까 낙태에 대해서 종교적 단위의 토론도,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반성도 하지 말라는 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새로운 합리적 입법을 촉구할 뿐이다.


반 세기 전 ‘가족계획운동’이라는 게 있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류의 구호들이 난무했었다. 국가적으로 피임을 장려하고, 더 나아가 낙태를 장려(까지는 아니더라도 묵인)했다. 1965년에는 피임과 임신중절을 홍보하는 가족계획버스가 존재하기까지 했단다. 이때는 형법상 낙태죄가 없었나? 아니었다. 있었다.


<가족계획>이라는 글자를 써붙인 대형차량들. (출처: 국가기록원)
1978년 가족계획 보통우표
1983년 가족계획 홍보포스터(출처: 국가기록원)

그래선지 내 어머니 또래 여성들에게 낙태경험은 드물지 않다. 일단 임신을 하면 go냐 stop이냐를 고민했다고들 한다. 이때는 낙태가 범죄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국가정책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지는 않았다. 너도나도 낙태를 한 것도 아니었다.


2019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낙태가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죄의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헌법불합치 결정은 “낙태는 죄가 아니니까 이제부터 죄의식 갖지 말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낙태하세요”라는 공개허락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캐럴 길리간(Carol Gillgan)의 <다른 목소리로>의 3장 ‘자아와 도덕의 개념’에는 여러 이유로 낙태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 실려있다. 낙태를 경험하면서 여성들은 도덕성 위기에 빠진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 위기상황, 혼란을 겪으며 여성들은 성숙할 수 있다. 사실상 여성들은 자기 몸 안에 발생한 ‘낯선 존재’한테 자기가 어떻게 했는가를 골똘히 검토한다. 그 사건을 다루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단단해지거나 반대로 허물어진다. (아마도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가능하면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허물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여성의 심리발달


그러니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마당에, 나는, 낙태에 대한 논의가 여성들 사이에서 이제 ‘법 수준’ 이상의 지평에서, 여성의 심리적 건강과 자아발달의 차원에서 계속 (더 열심히)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죄가 아니니까 됐어, 이슈파이팅은 끝났으니까,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낙태라는 인생사건을 둘러싸고 여성들 사이에 ‘논쟁’이 가능한 한 더 다양하게 분화되고 본격화되면 좋겠다고, 전망하며 기대한다. 그럴 때 문득 나같이 낙태사건에서 아주 예외적인 인물처럼 보이는 인간도 가끔 끼워주면 고맙겠다. 왜냐면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본 경험 속에서, 솔직히 말해, 낙태는 내게, 상상가능한 어떤 처리(?!)방안이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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