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수업의 끝을 잡고, 애매함을 견디는 힘을 생각하다

by 글쓰는 민수샘

1. 고3 온라인 수업이 4주 차에 접어들었고 어쩌면 다음 주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온라인 개학의 혼란 속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중에 EBS가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부적정 수강 의심 내역' 명단을 조회 가능하게 만들어서, 담임샘들을 수사관으로 만들었어요. 대부분 두 대 이상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복수의 과목을 동시 수강한 아이들이 명단에 떴는데, 개별적으로 물어보니 이실직고를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컴퓨터가 이상하거나 EBS 내에서 영상이 재생이 안 돼서 그랬다는 아이도 많았습니다. 교사가 무슨 탐정도 아니고, 판단하기 애매했습니다.



2. 금요일인 오늘 아침에 온라인 클래스에 들어가 보니, '적정 수강 여부 확인 필요'로 메뉴가 바뀌었네요. '의심하지 말고, 확인'하라니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 수강하는 경우는 사라졌고, '자동화 프로그램(매크로)' 이용 의심 내역 학생들의 명단이 떴습니다. 한 명도 없는 과목도 많았는데, 제가 가르치는 과목에서는 학년 전체에서 3명이 있더군요. 역시 연락해서 물어보니, "강의를 듣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다시 되돌아가서 여러 번 들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말이 맞다면 오히려 열심히 들은 아이들을 알려주는 고마운 기능이지요.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매크로를 돌려서 부정 수강을 하는 아이도 있을 테니, 역시 애매한 문제입니다.



3. 온라인 수업이 장점도 있지만, 가장 큰 단점은 '면대면 수업'이 아니라는 점이겠지요.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주고 받는 수업의 장점으로 '학생 주도, 수준 높은 배움, 공동체성 함양' 등이 우선 떠오르지만, '애매함을 견디는 힘'을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길러주는 것도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처음 부적정 수강 의심내역이 생겼을 때, 교무실엔 의견이 분분했어요. 명단에 있는 아이들을 수강 취소시키고, 다시 듣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지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애매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일단 며칠 지켜보고, 계속 명단에 이름이 있는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추궁해보자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요. 이것 역시 해프닝으로 끝났고, 오늘 아침의 매크로 이용 문제도 역시 애매한 상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4. 교사와 학생의 만남으로 성립하는 배움에서 '애매함'만큼 매력적인 상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아이가 이해했는지 모르고 있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 수업 시간에 잤는지 눈만 감고 있었는지 정말 애매한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의 진정한 대화가 시작되고 갈등을 거치면서 관계가 진전되고, 새로운 인식과 소통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성장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디지털 문자인 0과 1의 연속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법이나 규칙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또 애매하게 해결이 되면서 아이들은 한 학년씩 올라가고 졸업을 합니다.


5. 돌아보면 저의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도무지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분들에게는 모든 것이 명확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감탄할 정도네요) "이 아이는 우등생인데 저 아이는 문제아이고, 너희 반은 모두 머리가 돌인데 옆 반은 모두 수학 천재이고, 지각을 하면 무조건 1분에 한 대씩 맞고 야자를 도망가도 마찬가지고, 대학을 나와야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은 진리이고..."


6. 온라인 수업의 끝을 잡고 온라인이 주는 편리함을 애써 거부하고 싶습니다. '출석 체크를 몇 분에 했는지, 강좌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과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보다 애매한 상황을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로 여기고, 지금은 온라인이지만 등교하면 2미터 떨어져 앉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믿어주고, 속아주고, 다시 믿어주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대부분 애매한 상황이 의미 없어지거나 해결되더군요.^^;


7. “애매함으로 인해 생기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길은 새로운 도전과 방향성을 갖추는 일이다.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을 주의를 요하는 의식적인 일로 대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애매함을 견디는 능력은 내공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그냥 안고 갈 수 있는 능력. 사실 판단해야 할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그냥 해결해 주는 것이 참 많다.

-하지현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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