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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한탄보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말하기

- <미움받을 용기2>를 읽으며

by 글쓰는 민수샘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2학기 등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처음에는 누군가를 격렬하게 미워하게 되었고 '2학기는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하는 한탄을 하며 제 자신과 아이들이 불쌍해서 우울해졌어요. 한없이 가라앉은 감정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서, 예전에 몇 장 읽어보다 말았던 <미움받을 용기2>를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무너진 터널 속에 갇혀있다가 멀리서 빛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진작에 끝까지 읽었으면 참 좋았겠다'라는 혼잣말을 계속 하면서 맛있은 요리를 대할 때처럼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원제목인 <행복해질 용기>가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 <미움받을 용기1>를 읽을 때도 행복을 '대가 를 바라지 않는 공헌감'으로 정의한 것에 크게 감화되었고, 혁신학교로 옮긴 후에 겪었던 교사생활의 어려움을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지요.


오늘은 '이 시국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학교에 가야 하고, 동료교사와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까에 관해 배우고 느낀 것을 간단하게 소개할게요. <미움받을 용기2>에서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설명하는 철학자를 비판하며 딴지를 거는 청년이 교사라는 점도 매우 흥미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없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화가 난 청년에게 철학자는 카운슬링을 할 때 사용하는 '삼각주'를 보여줍니다. 한 면에는 '나쁜 그 사람', 다른 면에는 '불쌍한 나'가 적혀있고 마지막 한 면에는 무엇이 적혀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삼각주에 대해 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카운슬링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둘 중에 하나의 이야기를 내내 하다 가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하소연하거나, 자신을 탓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혹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중오를 털어놓지. 카운슬링뿐 아닐세.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할 때,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때,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자각하기란 그리 쉽지 않네. 하지만 이렇게 시각화하면 결국 이 두 가지밖에 말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네. … 아무리 '나쁜 그 사람'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불쌍한 나'를 알아달라고 해도, 그리고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일시적인 위로는 될지 언정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하니까."


그렇다면 마지막 면에는 어떤 말이 적혀 있을까요? 바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들의 미래인 아이들을 만나는 교육자들이 아이들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겠지요. 왜냐하면,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자립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니까요.


"설령 내가 '나쁜 그 사람'이나 '불쌍한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거 참, 힘들었겠군" 혹은 "자넨 아무 잘못도 없어”라고 동조하면 잠깐 마음은 편안해지겠지. 카운슬링 받기를 잘했다, 이 사람에게 털어놓기를 잘했다, 하고 만족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래서 내일부터 매일이 어떻게 달라질까? 다시 상처받으면 위안 받고 싶어지지 않을까? 결국 그것은 '의존' 이 아닐까?"


코로나19 이후의 학교에서 고3 담임교사를 하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왔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도 많았어요. 변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쩔 수 없고, 발전하려고 하는 아이들이라도 잘 도와주자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사실은 저 역시 "선생님 덕분에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졸업하게 되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 아이들을 구원하려고 한 것이지요.


"교육자는 고독한 존재일세. 누구에게도 칭찬을 받거나 노고를 위로받지 못하지. 모두 자력으로 학교를 떠나니까. 감사의 인사조차 받기 어렵지. 학생들한테 감사의 마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자립'이라는 큰 목표에 공헌했다는 공헌감을 갖는다, 그 공헌감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 수밖에 없지. … 만약 자네가 학생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 원한다면, "선생님 덕분"이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자립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게."


정말 알듯 말듯, 공감이 갈듯 안 갈듯 한 말입니다.^^; 그래도 계속 책을 읽다 보니 '자립'의 진정한 의미와 '자립을 돕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철학자가 교사인 청년에게 이야기하는 '존경, 신뢰, 공동체 감각, 협력의 원리, 그리고 사랑'의 필요성에 대해 저 역시 설득당해서 저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으로 2학기 시작을 기다리게 되었답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를 하는 것 같아서, 이만 줄일까 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들과 동료 교사를 만날 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대화를 나누겠다는 결심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위기의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공동체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요.


"공동체 감각에 관해 아들러는 기꺼이 이런 표현을 썼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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