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배우는 첫 시간, 아이들에게 "소설은 어쩌다가 소설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배움의 대상에 관한 본질적인, 근본적인 질문이지요. 서양에서 소설(novel)의 발생에 관한 글을 읽기 자료로 주고, 이를 참고해서 동양에서 '소설(小說)이란 명칭이 생기게 된 이유'를 추리해 보도록 했습니다.
20년 동안 국어 수업을 했지만, 소설이 왜 '작은 이야기'로 불리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소설의 구성 요소, 주제 제시 방법 등은 목이 잠기도록 가르쳤지만, 정작 소설이 왜 생겨나게 되었고 인간에게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인가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산 위에서 숲을 봐야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아이들에겐 교과의 본질에 관한 큰 질문이 필요합니다. 모둠 토의는 역시 단톡방을 이용해서 진행했습니다. 한 달이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사이라, 아이들은 바로 본론에 들어가네요.
모둠 단톡방 대화를 지켜보다 보면, 저는 "음.."이란 표현이 참 좋습니다. 한 모둠의 4명이 다 자기가 할 말만 한다면 정신이 사납겠지요. 그리고 배움의 속도와 준비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친구의 의견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겠다는 아이의 태도가 참 반갑습니다. "오오,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감탄사와 긍정의 표현도 멋집니다. 자기 생각과는 다르거나, 혹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더라도 친구의 의견을 일단 수용하는 자세가 어른스럽습니다.
위의 모둠은 소설에서 '작은 소'의 의미를 길이가 짧거나 내용이 간단한 것으로 파악했는데, 읽기 자료를 꼼꼼하게 읽은 아이들은 소설의 발생 과정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둠은 제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았어도 전래동화 같은 구비문학이 소설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리하는 과정이 훌륭해서, 다음 시간에 캡처한 대화 내용을 학급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칭찬해 주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 '홍길동전'이고 이 소설이 당대에 널리 읽혔을지 생각해보라고 도움말을 주었더니, 소설의 기능에 관해서까지 논의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사가 설화나 패관문학 등의 어려운 학술 용어로 설명하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소설이 지닌 근대성과 혁명성을 나름대로 이해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평범하지만 운명을 거부하는 문제적 인물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새로운 자신과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건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소설임을 함께 알아나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저잣거리에 떠도는 하찮은 잡설로 치부되던 소설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존재이고 그래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세상에 던진 것이지요. 다음 시간부터는 현대소설 한 편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그려진 비인간적인 세상을 어떻게 하면 더 인간적인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작지만 큰 이야기를 불온하게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