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어느 햇살 좋은 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멋진 음악도 들으면서 기분 좋은 추억을 올리며 행복감을 느끼려고 시도해 보세요.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이렇게 속삭일 것입니다. '너 지금 뭐 하니? 너 지금 이럴 때야? 네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뭐라도 열심히 하고 있을 텐데, 이러고 있어도 되겠어?' 그러면 서서히 내가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닌가, 너무 뒤처지고 있지는 않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김누리 교수님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이러한 증상을 '내 안의 노예 감독관'의 속삭임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저 역시, 비슷한 불안감을 자주 느끼고 있어요. 방학 중에 온라인 연수를 듣기고 하고, 틈틈이 책도 읽고 좋아 하는(?) 다큐멘터리도 챙겨보면서 2학기 수업 구상을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김누리 교수님의 책에서 발견했지요. 분단과 전쟁이 만든 불모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군사 독재의 권위주의와 경제 성장 제일주의에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당했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된 지금도 학벌주의와 능력주의를 종교처럼 믿으면서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경쟁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착취'를 '자기계발'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면서요.
"타인이 착취를 하는 경우에는 착취당하는 자의 내면에 착취하는 자에 대한 저항 의식이 생깁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는 경우에는 내면에 죄의식이 생겨납니다. 이게 끔찍한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안 되는구나.' '내가 게을러서 실패하는 거지? 내가 공부 안 해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더 노력해야 해'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비난하고 착취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착취를 당하면서도 착취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 많은 자살과 자해의 지옥이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자기 착취를 통한 죄의식'을 갖게 하는 만든 이들은 부와 권력, 사상과 문화까지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지만, 교사들 역시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더 노력해라'라는 말로 자존감보다 먼저 불안감을 경험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2003년부터 2020년까지 2017년 1년을 제외하고 OECD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는 나라에서, 그리고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인 나라에서 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게 학교를 만드는 위해, 독일이 강조하고 있는 '비판 교육, 인권 교육, 생태 교육'을 우리나라에서도 더욱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아래의 신문 기사처럼, 자살률 1위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우울증약 복용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요상한 자기 계발로 내몰지 말고요.
그래도 희망은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군사독재 시대에 학교를 다닌 세대가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느꼈듯이, 요즘 아이들도 1등만 대우받는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도 역설적으로 소박한 행복과 평등한 사회,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를 지켜주는 복지 국가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이런 모습을 이대훈 선수의 과거 인터뷰에서 발견했는데요. 지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있는 줄 알았는데, 동메달과 은메달만 땄더군요.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이대훈 선수 같은 마인드를 우리 아이들 모두가 갖게 된다면 금메달 이상으로 기여하는 것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인정받고, 실패하더라도 낭떠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올림픽을 끝마치면서 이기면 기쁨보다는 상대 슬픔을 더 달래주고, 또 진다면 제 슬픔보다도 상대의 기쁨을 더 높게 해 주기로 저 스스로 약속했거든요 저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여기 최선을 다 안 한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