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무탈한가요?>를 읽고 있을 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소름이 끼쳤습니다. 참사의 원인을 특정 개인에게 떠넘기기 등의 SNS에 떠돌았던 반응과 참사 초기에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는 책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화가 치밀었는데, 이 책을 계속 읽으면서 '도대체 이들은 왜 그렇게 너절한가?'에 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정치'를 다룬 장에서,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쓴 <위험한 정치인>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합니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자살률·살인율이 평균보다 높아지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는데, 이는 불평등을 대하는 정치의 태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빈곤을 개인의 나태함이 빚은 산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한 공화당의 정책이 많은 사람에게 OOO을 주어, 범죄와 자살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217쪽)
OOO에 들어갈 단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수치심'입니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미국은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로 더 빨리 기울어져서,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못된 정치나 경제 시스템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무너져 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교육 문제를 다룬 장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한국의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과거에는 스스로가 잘났다면서 '과시'하는 형태였다면, 현재는 누군가를 못났다면서 '멸시'하는 잔인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 계발이 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수준을 넘어서 타인을 재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개인의 잘못이라며 탓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47쪽)
개인의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학교에서 공부 안 한 결과'로 당연히 여기는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현상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재력과 권력을 가지게 되면, 아랫사람을 머슴 부리듯 하고 갑질을 해도 죄책감이 가질 수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대형 참사가 나면,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논의를 시작하지 못하고 '위험한 자리에 갔던 사람들'을 탓하거나, 모든 책임을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소수에게 뒤집어 씌우고 악마로 만들어서 '수치심도 없는 것들'이라며 대중을 선동합니다.
빈곤과 불평등을 '노력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잘못된 사회 구조를 숨기고 기득권 세력의 부와 권력 독점을 정당화하듯이, 참사가 일어나면 특정한 개인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성난 군중의 돌팔매를 맞게 하면서 정작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저 높은 곳에서 비웃고 있지 않을까요? 안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