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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Jun 22. 2023

부장 교사의 '독박 리더십'을 위한 변명과 해결 방안

  올해 교사 리더십을 주제로 연구년을 하며 읽은 논문 중에는 의외로 재미있는 주제도 많았다. 최근에는 '일반계 고등학교 학년 부장의 교사 리더십'과 '초등교사 간 공존 양상'에 관한 연구가 가장 공감이 많이 갔다.

  논문에서 정의한 학년 부장의 리더십은 한 마디로 '독박 리더십'이다. 이 절묘한 역설에 담긴 속뜻이 구슬펐다. 같은 교사로서 지시하기 어려운 부담과 애매한 역할 속에서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독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연속해서 4년간 학년 부장을 하면서 교장, 교감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들 사이에 끼어 괴로울 때가 많았다. 학년부 내에서 업무 분장이 있지만 담당 선생님께 처음부터 설명하고 부탁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불꽃 나게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했다.

  이처럼 독박을 떠안는 현상은 다른 논문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초등교사의 문화적 특징 중 하나가 '폐 끼침'이었는데, 동료 교사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한 '회피기제'가 눈에 띄었다. 나 역시 늘 바쁜 담임샘들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선생님들이 출근하기 전에 가정 통신문을 정리해서 학급함에 꽂아 놓거나 교무실 비품 정리를 하곤 했다. 지각생 지도나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다 허겁지겁 수업 자료를 챙겨 교실로 뛰어가는 담임 선생님들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논문에서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소수 교사가 독박을 쓰는 문화'를 없애기 위해 어떤 해결 방안을 제시했을까?

  처음 언급한 논문은 학년 부장 교사를 대상으로 한 리더십 프로그램과 담임 구성, 예산 편성과 사용에 관한 권한 부여를 정책으로 제시했다. 합당한 제안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해결책은 전체 교사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논문의 '폐 끼침의 패러독스'에 관한 분석이 흥미로웠다. 교사 간의 폐 끼침과 폐 입음에는 묘한 지점들이 있는데, 동료 교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행위가 오히려 폐가 되는 경우를 지적한 것이다.

학년 부장을 처음 할 때 주 1회 '학년부 신문'을 만들어서 담임샘들께 메신저로 보낸 적이 있었다. 원래 의도는 지난 기획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안내하고 이번 주 학교 행사와 학급 운영에 필요한 양식 등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때론 학년 부장으로서 담임샘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적기도 했다. 그런데 담임샘들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전달하면 될 일을 너무 자세하게 적고, 불필요한 자료이지만 "부장님, 자료 공유 감사해요"라고 반응해야 하는 부담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혁신부장이 되어 수업공개, 교사 워크숍 등을 안내하고 의견을 모을 때도 메신저 창 앞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후 메시지를 보냈다. 같은 학교 교사로서 당연히, 흔쾌히 해야 할 일인데, '바쁜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으로 협조를 요청합니다'와 같은 구절을 치렁치렁 매달아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와 관련해 두 번째 논문의 다음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나에게 스스럼없이 폐를 끼치는 동료교사에게 나 역시도 그에게 스스럼없이 폐를 끼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됨으로써 공명이 일어나고, 언젠가부터는 폐를 주고받는 사이가 더 이상 아니게 되는 것이다. 즉, 폐 끼침을 통해서 교사 간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돈독해짐으로써, 폐와 무관하게 협력이 가능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학교 일로 폐를 끼친다는 것은 '옳지 못하거나 해로운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담당자 혼자 힘든 일을 다하거나, 너무 조심스럽게 협조를 요청하면 오히려 동료 교사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본인은 독박을 써서 괴롭고, 다른 사람은 독박을 씌우는 것 같아서 괴롭게 된다.

  그래서 '남에게 신세를 지는 일'로서의 폐 끼침이 자연스러운 교사 문화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이미 친분이 있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가 평소에 수업과 업무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고 어려움을 나누는 자리를 많이 갖는 것이 필요하다. 수업에서 모둠활동을 하기 전에 모둠 세우기 활동을 하듯이, 교사들도 회의나 수업연구회를 하기 전에 친밀감 형성을 위해 벽 틔기, 얼음 깨기 활동을 자주 하면 좋겠다.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 또다시 담당 부서만 독박을 쓰면 안 될 것이다. 부서별, 교과별로 돌아가며 진행을 맡거나 교내에서 모둠 세우기 활동을 잘하는 선생님들을 강사로 모셔서 진행을 맡겨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부서, 학년, 교과의 벽이 낮아지고 폐 끼침을 주고받는 일은 '공헌하기'로 인식되어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질펀한 거름을 땅에 뿌리는 일은 고되지만, 더 화사한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히게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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