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이 잠시 머물다 갔으면...

- 미래엔 공통국어 교과서, <문학의 향기> 집필 이야기

by 글쓰는 민수샘

지난 글에선 조금 쑥스러워서 교과서 집필 후기를 뭉뚱그려 적었고, 출판사 이름도 흐리게 해서 올렸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다른 교과서를 집필한 선생님들이 올린 소개 글이 꽤 있어서 나도 책장을 좀 더 넘겨보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표지에 떠억 내 이름이 있는데 "이 교과서가 내가 만든 교과서다. 내 영혼이 들어있는 교과서다. 왜 말을 못 해?"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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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엔 공통국어1 교과서의 첫 단원인 <문학의 향기>를 집필했다. 처음엔 가장 좋아하는 문학 단원을 맡아서 집에 가며 방방 뛰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다른 집필진 선생님들과 출판팀의 뜨거운 관심으로 부담감, 압박감이 심해졌다. 교과서를 열어서 처음 보게 되는 '1권의 1단원'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만든 활동지를 하나씩 열어보고, 이전 교육과정에서 만든 교과서를 검토하고, 도서관에서 필요한 자료도 찾아보면서 주말을 보내기 했다.


그 결과 수많은 작품과 활동이 내 머리와 손끝에서, 그리고 편집회의의 치열한 토의 속에서 세상에 왔다가 평화롭게 잠들기도 하고 몇몇은 살아남아 화려한 잉크 옷을 입고 지면에 집을 지었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제재 선정과 학습활동 구성, 디자인까지 더 완성도를 높여 세상에 내놓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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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에 제안했던 단원명인 <문학의 향기>와 소단원 제목에서 '만남'이 끝까지 유지되어 기뻤다. 2015 미래엔 교과서의 대단원명인 '문학의 빛깔'에 이어서, 이제는 향기까지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학 작품을 앎의 대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만나는 생명체로 느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소단원명을 '서정 갈래와의 만남'으로 지은 것도 내게는 의미가 컸다. 그래서 친구와 만나 문학 갈래의 특성과 효과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탐구하기 위한 활동도 신경 써서 만들었다.


작품을 읽고 학습 활동을 하기 전에, '나의 책방'을 넣어서 학생들이 자신의 감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한 것도 미래엔 국어 교과서의 특징 중 하나다. 작품을 읽고 느낀 점과 궁금한 점 등을 적으면서 작품을 더 깊이 있게 만날 준비를 하고, 모둠에서 각자 적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친구의 생각'과도 만날 수 있다. 이때 교사는 아이들이 적은 내용을 보고 들으면서 활동의 방향과 수준을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다.


1단원 중에서도 처음 나오는 '단 한 편의 시'로 문태준 시인의 <산수유나무의 농사>를 실은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이 옆의 친구를 곁눈질하며, 또 그런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선생님이 바라보며 함께 시를 읽고 노란색으로 물든 나무를 눈에 담으면 온 교실에 봄꽃 향기가 넘쳐나지 않을까? 이런 큰 그림으로 '문학의 향기'로 단원명을 정했다면 믿어주실까? ㅎㅎ 시의 내용도 너무 좋아서, 3월의 산수유나무처럼 1년 동안 서로를 위한 '그늘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상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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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갈래와의 만남'에는 영화 <동주>의 시나리오를 실었다. 윤동주 시인인데, 배우 강하늘과 박정민인데, 긴 설명이 필요할까! 나는 윤동주의 시가 좋아 국문학과에 갔고, 시인의 삶과 죽음을 세밀하게 알게 되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내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 <동주>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에 빠져서 수업에서도 자주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동주와 몽규의 숨결을 따라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교과서에 실리면 참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됐기에 어떤 장면을 실을지 정하기 위해 영화를 반복해서 봐도 신기하게 질리지 않았다. 행복한 고민 끝에 동주가 여진과 '썸타는' 장면을 앞에 넣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나에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감옥에서 동주가 죽어가는 마지막 부분은 너무 슬프고 비극적이라서 줄거리로 대신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시신을 보고 절규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유골이 고향에 묻히는 장면까지 모두 넣었다. 극 갈래의 본질인 인물의 내적·외적 갈등과 세계와의 대립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선생님이 영화 <동주>의 일부를 보여주고 교과서에 실린 시나리오와 비교하는 활동을 할 것 같다. 또 영화에 삽입된 강하늘의 시 낭송을 들으며, 윤동주의 시를 자연스럽게 감상하면서 문학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순간에, 아이들과 국어 선생님 곁에 윤동주 시인이 잠깐 내려와 머물다 가면 좋겠다. 식민지 시대에 자신의 국적이 일본인 것을 부정하고 거부하다 삶을 마쳐서, 여전히 27살인 청년 동주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하늘로 돌아갈까? 슬프지만 따뜻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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