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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Dec 06. 2024

시민 여러분, 제발 불이라도 켜주세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학 1학년 4.19 때 선배 누나(!)의 손을 잡고 처음 시위에 나갔다. 최루탄 터지는 소리와 죽음의 공포를 안겨준 가스를 마시고, 누나의 손을 놓치고 도망가다 전투경찰 버스 쪽으로 달렸고 그들의 품에 안겼다. 닭장차라 불리던 버스 안에 던져져, 몇 분 동안 1초에 한 대씩 맞았다. 곤봉, 주먹, 군홧발로. 그날 밤 서울 외곽에 버려진 나는 절뚝거리며 걸으면서, '다시는 데모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물론 지키지 못한 다짐이 되었지만.. 


국회에 쳐들어온 계엄군의 돌격 소총, 저격용 총, 실탄 상자를 보며, 닭장차에서 그들에게 내어준 내 머리통을 생각했다. 그때의 통증이 떠올랐다. 군대에 있을 때 만져본 K2 소총의 얼음장 같던 총열, 무쇠처럼 단단한 개머리판의 감촉도 살아났다. 총알이 아니더라도 휘두르는 그 총에 맞는다면... 설마 했던 일이 실제 일어났고, 제2의 비상계엄 선포도 현실이 될 수 있다. 계엄군이 다시 출동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제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종교가 없지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붙잡고 기도하고 있다. 제발 이 말이 실현되지 않기를...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지금을 비극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이를 위해서 적어도 12월 7일 밤과 다음 날 새벽까지는 집마다 불을 켜두면 좋겠다. 눈과 마음의 불도 환히 밝히면 좋겠다. 



  모든 건물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모든 창문이 걸어 잠겨 있었다. 

  그 어두운 거리 위로, 얼음의 눈동자 같은 열이레 달이 당신이 탄 소형 트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방송은 여대생들이 했다. 그녀들이 완전히 지쳤을 때, 목이 갈라져 더이상 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당신은 사십여 분 동안 메가폰을 잡았다. 불을 켜주세요, 여러분. 당신은 그렇게 말했다. 캄캄한 창문들을 향해,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골목을 향해 말했다. 제발 불이라도 켜주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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