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은 글은 알지만 인생을 몰랐네

-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읽기

by 글쓰는 민수샘

시국이 수상하여 평범한(?) 책은 손이 가질 않는다. 문득 서재에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꺼내 다시 읽었다. '여든 앞에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란 책인데, 처음 읽을 때는 글자를 알게 된 기쁨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런데 지금은 '순천'이란 지명이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 당시 할머니들은 10살 내외의 소녀였다. 담담하게 그날의 비극을 서술한 문장을 천천히 눈에 담으니, 눈물도 차올랐다. 두꺼운 장편소설보다 더 진실한 이야기여서 그랬나? 지금의 응원봉 물결도 그렇고, 한국 여성이 보여주고 있는 인내와 사랑, 긍정의 힘은 정말 존경스럽다.


"반란 사건이 나서 끌려갔던 오빠가 밤길을 걸어 논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오빠를 보릿대 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자수를 시키려고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인민군으로 갔다 왔다고 오해를 하고 모두 싸잡아 총살을 시켰습니다. 오빠는 그때 혼인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올케 될 사람은 오빠도 없는데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살다가 재혼을 시켰습니다. 올케는 재혼한 남자와 아들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드나들며 며느리 노릇을 했습니다. 나는 올케가 너무나 대단해 보였습니다."


"반란군 때문에 인민군들이 나와 한 살 많은 여자 조카를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나는 돌려보내고 조카만 데리고 갔습니다. 그 뒤로 조카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빠들이 넷이나 반란군한테 끌려가고 순경들은 우리 집을 감시했습니다. 그리고 작은집 식구와 우리를 냇가로 끌고 가 작은아버지를 총으로 쐈습니다. 작은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우리들은 무서워 벌벌 떨었습니다. 우리는 몇 달을 냇가에서 천막을 치고 감시를 받으며 살았는데 엄마는 내가 잡혀갈까 봐 늘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순천의 할머니들은 글은 몰라도 인생의 진실을 알았고 묵묵히 실천했다. 하지만 현재의 권력자들은 글은 잘 알아서 좋은 대학에 가고 출세도 했지만 인생을 몰랐다. 고통 속에서도 공동체를 지키고 자식을 길렀던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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