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다니던 90년대까지는 문학 좀 한다는 사람들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으로 대립했다. 참여문학은 어떤 사상에 종속된 날 것의 언어는 문학이 아니라고 비판받았고, 순수문학은 고통받고 있는 당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언어는 공허하다고 비판받았다. 이들은 강의실에서도 앞뒤로 갈라져 앉았고(물론 참여 쪽이 뒤에..) 서로 다른 책을 읽었고, 다른 술집에 갔다.
이렇게 갈라져 있던 것은 '독재 권력과 싸우다가 누군가 죽어 나가는 시대'였기 때문인 것 같다. 시위하던 대학생이, 파업하던 노동자가, 철거에 저항하던 도시 빈민이 목숨을 잃어버리던 시대였다. 그래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차분하게 소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청년들은 겉으로 드러난 구호였든, 상징으로 표현된 분노와 애도였든 각자의 방식으로 양심을 실천했다. 그리고 아직 피가 뜨거운 20대 청년이라 순수와 참여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참여문학 동아리에 들어가서 '시 창작단' 활동을 하고 학생회에서 문화 일꾼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밤에는 학교 앞 큰길을 건너 호기심에 재즈 카페에 가기도 하고, 집에 갈 때는 '마이마이(워크맨)'으로 헤비메탈이나 신해철, 이승환의 발라드 음악을 들었다. 순수문학 동아리 친구들도 가끔은 집회에 참여해서 민중가요를 불렀다. 시간이 많이 흐르니 이제야 보이는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다.
다행히 지금은 순수와 참여의 구별 없이 광장에 모여 함께 분노하고 더불어 즐기고 있다. 대립하던 아이돌 팬덤이 형형색색 응원봉 불빛으로 하나가 되었고, 50·60대 농민과 20·30대 여성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동짓날 추운 밤을 지새웠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청년 세대와 5.18을 겪는 중장년 세대가 나란히 앉아 '임을 위한 행진곡'과 '다만세'를 부르며 울고 웃었다. 이 역시 우리 국민이 투쟁이든 투표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순수하게 참여한' 결과이다.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에 길이 남을 2025년 1월 3일 아침에 '낙화(이형기)'의 모방 시를 써봤다. '깨끗하게 가는 게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텐데...' 이런 순수한 마음을 문학으로 실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