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by 글쓰는 민수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갈매기가 부둣가에서 울었기 때문이야

파도가 치는 대로 떠내려가는 과거도 쪼아먹고 날아가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생일에 살구꽃이 피었기 때문이야

나뭇잎 사이 햇살 아래서 선잠을 자면 죽은 벌레와 함께 흙이 될 수 있을까


박하사탕, 항구의 등대, 녹슨 아치교, 버려진 자전거

목조 역 난로 앞에서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마음

오늘은 꼭 어제 같아 내일을 바꾸려면 오늘을 바꿔야 해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마음이 텅 비었기 때문이야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는 건 분명 채워지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신발 끈이 풀어졌기 때문이야

다시 묶는 건 어려워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도 그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소년이 나는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야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 그날의 내게 미안하다고


컴퓨터의 희미한 불빛, 위층에서 들리는 소음,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

귀를 막는 새장 속 소년,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작은 방의 돈키호테

목표란 건 어차피 추악한 거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차가운 사람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사랑받고 싶다 우는 건 사람의 온기를 알아 버렸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네가 예쁘게 웃기 때문이야

죽을 궁리만 했던 이유는 항상 삶에 너무 진심이었으니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아직 너를 만나지 못했었기 때문이야

너 같은 사람이 태어난 세상을 조금 좋아하게 됐어

너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조금은 기대해 볼게



- 놀랍게도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신춘 문예의 수상작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운 노래 가사이다. 나카시마 미카가 부른 노래는 제목인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 반복되면서 화자가 처한 상황을 선명하게 묘사하고 외로움과 회한을 전한다. 그리고 '너'라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고백으로 반전을 주며 끝난다. 직설적 표현을 비유나 상징으로 조금만 바꾸면 정말 좋은 시가 될 것이다. (국어샘의 심사평 ^^)


나카시마 미카의 목소리와 몸짓도 한 편의 영화 같다. '눈의 꽃'을 부른 가수로만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한일톱텐쇼'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 자기 말의 울림과 신체 내부의 소리까지 증폭되어 들리는 질병인 이관 개방증으로 10년 넘게 고통받다가 최근에 완치되었다고 하니 더 감동이었다. 불안하고 불쾌한 뉴스로 잠을 설치고 때론 급격하게 우울해지는데, 이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음미하며 '공감과 나눔,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너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기대'를 그래도 많이 해보고 싶다.

(아래에 두 개의 링크가 있는데, 콘서트 버전을 먼저 듣고 한일톱텐쇼 라이브를 이어 들으면 좋을 것 같다.)




https://youtu.be/1vmHmMp0N0s?si=IWrjUDJwSS-ZpFVV



https://youtu.be/RqIYSVBCmO8?si=v-utLr85spo23I9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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