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솔 Apr 24. 2018

" 사랑이 쉬웠던 적 "

그런 적이 있었다.

사랑, 지나치게 가벼웠다.


유치한 고백이라면, 사랑이 쉬웠던 적이 있다. 


설렌다거나, 두근거린다거나, 마음이 쉽사리 부풀어버리는 그런 적이 있었다. 가볍고도 짙은 사랑에 빠져서 나는 감정 자체를 즐겨대곤 했다. 타인의 마음을 기만하여 우습게 여겼던 적도 있었다. 도치되어 스스로를 잃어버릴 때까지 멍청한 짓을 반복하고 나는 내 본질을 잃는다는 것도 가볍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마음을 저울질하고 내치고 끌어안고 할퀴고 부수고 감싸고 긁고 찢고 이어 붙이고 하는 행위들이 모두 사랑이었다면 나는 쉬웠다. 자만할 정도로 우스웠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목도리 선물을 주지 못해 겨울이 지나도록 전해지지 않은 적도 있었고 집까지 거리가 멀지만 문 앞까지 함께 동행하기도 했고 운동장 펜스 뒤에서 눈을 마주치고 피식거리기도 했었다. 주목받지 못한 마음이래도 닦아내면서도 힘이 들지 않았다. 그것도 사랑이었다면 어쩌면 쉽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가는 방향을 두는 건 영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혼자만의 감정을 추스르는 게 어려웠을 뿐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감정을 상실한 시대에 살아간다는 건 어렵다. 수없이 쏟아지는 쉬운 말들과 현혹되기 쉬운 타인들 때문에 금세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이젠 너무 당연시되어 버렸다. 손을 잡는 게 어려웠었지만 잠은 자는 게 쉬워졌다. 손까직 로만 부족했는지 살갗을 비비기 시작했다. 때론 무겁다고 느껴지면서도 공허에 취해서는 사담이 되고 말았다. 해맑은 눈으로 사랑의 시작을 지켜보다가도 입방아 몇 번을 지나면 더러운 스캔들이 되고 만다. 물결이 모이면 파도가 된다. 휩쓸려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상처 준다는 것들에 대해 대담했었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타인의 감정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었다. 준비되지 않았다던가, 마음이 부족하다던가, 어렵다던가 모두 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궁색하고 옹졸한 변명에 불과하다. 감정 폭력에서 가해자가 되었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우는 누군가의 앞에서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내 관계를 선점한 내가 관계를 끝낼 때에 피해자의 처절한 기도 또한 있었다.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부끄럽게도 용서를 구한다던가 그런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를 상실하고도 정신 차리지 못했다.  


공허한 기분이 찾아오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상처를 주고 공허함에 빠져 허덕거리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를 반복한다. 한땐 진심이었다가 이내 가식이 되고 만다. 단순 대책이었던 감정소비의 지독한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동안의 잘못, 과오 같은 것들에 대해 분명히 갚고 있구나 생각했다. 죄책감이나 후회에 시달리기도 했고, 내가 필히 벌을 받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할 만큼 호되게 당하기도 했다. 진심을 다한 상대방에게 등 돌려지는 느낌이란 어디에다 손을 내뻗쳐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꼴이란 가여우면서도 하찮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사랑의 잔여물들을 윤리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기에 선과 악의 감정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짧은 생각이 아닐까. 죄책감이나 못된 감정을 씻어내려는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야만 내가 가진 감정들이 잘 표현되는 것 같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나는 단 한 명의 사랑에 피살되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현장에 남은 셈이다. 나는 그 현장에서 발 떼기가 무서워 반 발자국 정도 떼었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럼에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하면서도 나는 허무한 것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놓지 못한다.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현장에서도 나는 그게 사랑이었다고 온 몸에 덕지덕지 처바르곤 한다. 현장을 모두 뒤집어놓고 그게 제자리였던 셈 낄낄거리기도 한다. 그런 짓을 몇 년간 반복하다 보면 미쳐버릴 법도 한데 여전히 스스로가 가엾다. 그래도 나는 현장에서 벗어날 때가 오지 않을까 쉼 없이 기다린다.


사람이나 사랑이나 그렇게 변해간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는 것처럼 시시때때로 변화는 자아의 우주를 뒤흔들어 놓는다. 나는 우습게도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이전처럼 쉽게 설레는 일도 어려울뿐더러, 가슴이 뛰도록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도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이 돼버렸다. 감정 소모에 지쳐 버렸고 그 옛날의 감정처럼 지나치게 사모하는 것도 힘든 일이 돼버렸다. 때때로 손을 내밀다가도 이내 제 두려움에 놀라 황급히 빼기도 한다. 울고 자빠지는 것 마저 부럽다고 느끼고 다시 그 과정을 겪게 되는 게 두려워 쉽게 관심을 피해버린다. 시시콜콜한 연애담은 클리셰를 통해 결말을 예측하곤 한다. 이제 두렵고 무서워진 게 다름 아닌 사랑이 돼버렸다. 그러고선 다른 의미의 말을 내뱉는다. 사랑이 쉬웠던 적이 있었다고, 분명.


봄이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알레르기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게 되어버렸구나.


그럼에도 사랑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 우리라는 단어로 불려질 만큼 마음이 향하는 사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생각나게 하는, 우스갯소리로 사랑을 증명하는, 침대에 같이 누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루를 마치고 싶은, 얼굴에 낙서라도 하며 웃어대고픈, 자질구레한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싶은, 눈을 마주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너무 오랜만의 감정이라 이런 사실 자체가 내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진심이 나오기도 전에 모든 걸 망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늘 휩싸이다가도 순간의 행복에 몸을 기대어 취하려 한다. 나는 이게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이성이 감정의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내겐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체할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처음을 잊지 못하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애정이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가고 때론 귀찮아질지도 모르겠다. 주는 게 어렵다면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약한 사람이기에 쉽게 무너진다. 생각이 많아 자주 우울해지곤 쉽게 어두워진다. 그럼에도 사람에게 향하는 사랑은 결코 닫아두지 않으려 한다. 내가 했던 실수처럼 내가 되돌아 받는 건 이제 그만되었으면 하고 부탁이며 기도처럼 빌어본다.


우울한 노래 몇 곡을 들었다. 몸이 으슬으슬하게 떨렸다. 요 근래 춥게 입고 다닌 게 화근이었구나. 손에 감은 붕대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일 병원에 가야 하는구나. 때아닌 새벽에 재채기를 하다가 코에서 피가 흘렀다. 황당하겠지만 이 모든 순간에 네 생각을 했다. 사랑이 쉬웠던 적은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 실감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