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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01. 2018

" 네가 "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

네가 이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어.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밤에 문장 몇 자를 적어 천장 위에 적어냈다. 즐겨 읽던 책에서,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 즐겨 듣던 너의 목소리에서 간추려 정자로 써내었다. 그러고 있노라면 꼭 네가 텁하고 나의 입 속으로 들어와 하루 종일 입안에서 간지럽히는 기분이 들었다. 들뜬 나의 마음을 조롱이라도 하듯 너는 장난으로 나를 탐닉하는 듯했다. 나는 그런 네가 싫지 않아 아침이 되어도 종일 입 안에서 우물거렸다.


너는 내게 예쁘다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에는 꼭 그런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그 기분에 취하고 만다. 나는 그 말이 좋아 단어 하나를 붙잡고 종일 그 생각을 온몸에 껴안는다. 내 웃음에 네가 만들어주었고, 그 존재하에 네가 있었다. 그러기에 나의 생은 네 것이고, 너의 생 또한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처음 마주친 너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순간에 어색한 미소가 너를 닮아 덩달아 무색해져 버리고 만다. 너를 만나기 위해  연습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족하다고 한창 동안이나 탓했다. 마치, 너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불쑥 뱉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이내 먼저 튀어나와버렸다. 그러니까, 너는 별이구나, 내가 달을 좋아하니 네 곁에 있어도 되겠구나 내심 깊이 안심했다. 네가 나만을 읽는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의 첫째 날이 끝나지 않았으면.


네 손을 잡고 나서야 직감했다. 태연한 척하려 해도 지독하게 떨려서 몰래 숨을 쉬었다. 한동안은 니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함부로 너를 보고 있으려면 온 세상의 시선이 애타게 나의 눈을 좇았다. 너는 어쩜 태연하게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답이라도 하듯 세차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어도 주위가 파르르 떨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찔하게 떨리던 와중에도 세상이 활짝 피었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너의 목소리는 나를 통과해 온통 무지갯빛으로 세상을 덮었다. 마치 프리즘처럼 온 세상의 빛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담다가도 이내 너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에 흔들렸다. 다시 끔, 마음을 가다듬어도 그 목소리에 쉼 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너의 소리 천천히 손을 마주대어 너에게 다시 집중하려 파고들어도 너는 다만 쉽게 허락해주질 않았다. 이내, 문득 그저 조용히 너를 따라 걸었고, 너의 한 발자국을 맞췄다.


좋아하는 가수의 짙은 목소리를 틀어놓고도 나는 너를 듣고 있었다. 아니, 조곤 하게 너의 숨을 듣고 있었다. 사람들이 저만치나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이 열 평 남짓한 공간 안에서 너와 나는 하루 종일 멈춰있었다. 어쩐지 역행하는 듯한 기분 속에 거스르지 않고 나는 천천히 네 볼을 쓰다듬었다. 너와 내가 이 공간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너와 내가 있는 이 장소가 애초부터 우리의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입술 속 수줍게 색색 대던 숨소리 사이로 네가 한참 동안 불었다.


내내 너를 기웃거렸다면 내가 우스울까. 너의 앞마당에서 나는 종일 문 뒤에 숨어 너를 기웃거렸다. 그런 나에게 보여주는 너의 모습은 이따금씩 나를 떨리게 했다. 기어이 수줍음을 참아내고도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내 너의 손등 위로 몇 자를 지어냈지만 네게 쉽게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네 마음속으로 한 자를 깊게 새겨냈다. 꾹 꾹 담아 소중하게 아슬아슬하게.


분명 어딘가에서 파도가 일었다. 때문에 자꾸만 짓궂은 말을 뱉어냈다. 너는 뻔뻔하게도 내 말 하나에 하나를 덧붙여 나를 자꾸 멈추게 만들었다. 이따금씩 너는 나의 말을 막았다. 네게 조금은 남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나는 자꾸 대담하게 굴었다. 네가 자주 쓰는 이모티콘처럼 두 볼이 붉어져서는 말이다.


새벽에 깨어 한참 동안이나 너를 보고 있었다. 네가 뺏어 입은 내 옷자락 위로 몇 번인가 쓰다듬었던 것 같다. 네가 깨길 바라면서도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곤 했다. 그러다 몇 번 소리 없이 재채기를 해댔다. 책상 위에는 우리가 마시던 맥주가 남아있었고, 덮어놓은 노트북 사이로 희미하게 파란빛이 몇 번 반짝거렸다. 별다른 이유 없이 이러고만 있어도 이게 사랑인가 싶어서 조용히 웃었다. 아침에 일어나 피곤한 시늉을 했다. 너는 여전했고, 나는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워 하나라도 더 담으려 너의 표정 이마 끝자락부터 입술 아랫 지점까지 온통 휘저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도 너는 수십 번이나 표정을 바꿨다. 입술을 꾹 다물고 노려보다가, 이내 피어서는 온통 웃음으로 번졌다. 나는 너의 모든 표정을 좋아한다. 너의 장난스러운 거짓말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뻔뻔한 마음의 욕심이 온통 너를 감쌌다. 나는 표정 하나하나를 담고 싶었는데 기억 채 모두 남지 않아 속상했다. 그런 내 마음을 어쩌다 네가 알아줄까 봐 싶어 내내 조마조마했다.


너는 나를 사랑이라고 불렀고, 나는 이 모든 것이 사랑이었으면 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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