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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내소사

그때도 겨울이었어
낮은 공기가 탁하게 깔렸고
긴 도로 끝 내소사가 가려 있었지

그날은 죽으려 했던 거야
ㅇㅇㅇㅇ 200알을 들고


고요한 절로 걸어가
삼배를 하였지

우습게도

돌아 나오면서는
기와에 소원을 적었어
친구의 합격 같은 거 말이다

그날 저녁
많은 이들이 고생을 했구나
사람이란 때론 참으로 모질더라

중환자실 허연 불빛
내 빰을 때리며 울던
간호사를 기억하네
"당신 말이야.
스물일곱이었으면 못 버티고
죽었을 거라고!
스물여섯인걸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삼 일 후 스물일곱이 되었지

마흔 되기 전,
그 절에 다시 찾아가네
10여 년째 변하지 않은 주변부
잔술을 권하던 힘없는 목소리가
예전과 닮았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부처님도 그대로요
풍경도 그대로인데
사람만이 변해 왔구려

사과하고 싶었는데
어찌할지 몰라 부처님 앞에
한참을 앉아 있

108배를 하고
땀등에 밖을 보니
밀려오는 사람 사람
초면에도 감사했

몸은 삐그덕 거리지만
볼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했네

가만히 눈물도 흐르다니
겨울은 가끔 이럴 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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