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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 함께 살아가기

함께 살아 봐!

by 김운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감기에 걸렸다. 새해 인사차 감기가 먼저 찾아온 듯싶다. 이 불청객은 올 한 해에는 몇 번이나 찾아오려나. 작년에는 세 번 감기에 걸렸다. 남들은 일 년에 한 번, 어떤 사람들은 한 번도 안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감기에 걸리는 횟수가 자꾸 늘어가고 잘 낫지도 않고 오래간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다. 작년 마지막 감기는 나았는지 아직 안 나았는지 사실 그 경계가 모호하다. 감기 증상은 없는데 목이 약간 부어 있는 상태이고 쉽게 피로해진다. 그런데 또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감기약을 먹으면 위장장애가 생겨서 그 또한 고생이 심하다. 이번에는 감기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과학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시대라고 하는 지금도 가장 흔한 질병인 감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은 아직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은 감기를 치료하는 약이 아니며 열을 내리거나 몸살과 염증 등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이라고 한다. 의사는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처방전을 타이핑한다. 진통제와 소염제, 진해거담제, 위장약 등 무려 네다섯 가지의 약을 먹어야 했지만 매번 약으로 나은 것인지 시간이 지나서 나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약을 먹어도 보름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처음 감기 증상을 느낀 첫째 날 아침이었다. 목이 약간 따끔거리고 몸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졌다. 감기를 직감하고 나 스스로 처방전을 만들었다. 첫째,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할 것. 둘째, 푹 쉴 것. 셋째, 2시간마다 소금물로 코와 목을 소독할 것. 넷째, 생강차와 무차를 따뜻하게 마실 것. 내가 만든 처방전을 보며 나는 이미 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처럼 흡족해하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처방전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의사를 믿는 것보다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우선 의사가 하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작은 전등으로 목안을 살펴보았다. 목에는 아직 염증 흔적은 없지만 불그스름하게 부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어제부터 감기 바이러스가 목 안의 세포에 침투하여 잠복하면서 활발한 번식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바이러스와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므로 일단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하여 이불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로 했다. 몸이 무겁고 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백혈구는 몸 안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세포 안으로 끌어들여서 먹어치우는 전투를 치르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듯싶었다. 전열을 정비한 백혈구가 반격을 하였지만 이미 목과 코 안 세포를 점령한 바이러스는 튼튼한 진지를 구축한 상태였고, 바이러스와 백혈구의 치열한 싸움으로 피아간의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몸은 점점 더 힘이 빠지고 이불 밖 찬 공기에 노출되면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둘째 날에도 두세 시간마다 소금물 소독을 하며 책 읽는 것조차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서 빈둥거렸다. 내가 만든 처방전을 잘 지켜서인지 감기 증상이 많이 심해지지는 않는 듯했다. 목은 더 붉어졌으나 기침은 나오지 않았다. 셋째 날에도 증상은 비슷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운이 없고 입맛도 없어서 억지로 밥을 먹어야 했다. 여전히 백혈구는 감기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넷째 날이었다. 목을 들여다보니 목 안에 군데군데 염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기침이 심하지는 않고 가래도 없었다. 염증이 보인다는 것은 바이러스의 세력이 많이 약해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증거이다. 물론 아까운 내 몸 세포도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다섯째 날이 되자 전투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는지 몸이 조금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감기 바이러스는 세력이 약해지고 몸은 천천히 회복이 되고 있었다. 딱 2주가 지나자 감기 증상은 사라졌다. 단지 목안에는 염증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인지 바이러스 잔당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노랗고 붉은 홍반들이 남아 있었다. 지난번 감기에서 나은 뒤에도 이 홍반들은 한 달 이상 남아있으면서 몸을 피로하게 하였다. 만성염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 염증과는 꽤 오래도록 함께 지내야 할 것 같다.


감기 바이러스는 200개 이상의 종류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많은 감기 바이러스에 하나하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감기 바이러스는 가장 흔한 바이러스이고 수시로 우리를 괴롭히지만 독감이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하면 온순한 바이러스이다. 또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바이러스는 기생과 복제와 진화에 능하며 가장 역동적인 생명체이자 최초의 생명체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없어서도 안 되는 우리에게 귀찮은 존재이면서도 유익한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만드는 산소를 흡입하며 살아가고, 우리 몸 안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유전자로 남아 생명 활동을 지속시키고, 태아를 보호하여 인류의 멸종을 막는 결정적인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모든 바이러스를 결코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해진다.


내 몸 안에는 감기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알 수 없는 많은 바이러스가 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의사가 좋은 처방을 내리고 좋은 약을 먹어도 바이러스를 몽땅 쫓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약은 바이러스가 아닌 나를 쫓아낼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기, 감기를 잘 다스리며 살아가기이다. 배척하고 제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나는 나의 편협한 기준으로 선과 악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이익과 손해를, 사랑과 미움을, 진실과 거짓을, 편리함과 불편함을 확실하게 구분하며 살아왔다. 선으로 알고 추구했던 것이 악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이익만을 쫒던 삶이 낭패가 되기도 했으며, 불편을 감수한 생활이 나를 단련시키고 성숙하게 하기도 한다. 내 몸에서 소멸해 가는 감기 바이러스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함께 살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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