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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Nov 28. 2022

일희일희해야 함

우울이 이따금 찾아 올 때

나는 드디어 로또에 당첨되고 만다.


오만 원.


찌발.


모 IT기업에 다니는 괭이같은 친구 L은 매주 로또를 산다. 그는 그것을 '투자'라고 칭한다. 한 때 나는 요행을 부리는 꼬라박 돈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내비쳤지만, 아무튼 투자란다. 사실 그 친구가 단타, 장투로 주식으로도 꽤나 번 전적이 있기 때문에 돈 가지고 뭐라 하지는 못 한다. 재정력으로 치면 나는 우리 중에 최약체니까.


그래서 나도 이따금씩 로또를 산다.


태국에 있을 때도 한두 번 정도 산 기억이 있다. 1등이 혹 란, 그러니까 6백만 밧, 한화로 2억 2천이 조금 넘는다. 태국에 있는 친구들도 내집마련의 꿈으로 '투자'를 매번하지만 종종 조용히 종이를 찢곤 한다. 555.


두 장에 한 번 당첨되었으니 4만 원을 번 것인데, 그동안에 로또에 들인 돈을 생각하면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로또 사지 말아야 한다. 인생이 더 암울해질 테니까. 나는 이번에 당첨되면서 새삼 느낀 것이 있다. 요즘같이 소노(小怒)가 잦을 때는 차라리 작은 행복에도 과하게 기뻐하며 행복 회로 돌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라는 것.


그리고 생각을 해 보건데 내 짧은 30여 년간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 암울하고 뭣같았던 일이 짜잘짜잘한 것을 합치면 70~80%은 되어 보였다. 나머지 20%정도에서도 큼직큼직하게 기뻤던 것이 머리에 뇌리박혀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게 하는 것 같다. 이젠 그 기쁨도 옅어진다. 충전이 필요하다.


나는 누가 보면 집에 큰 우환이 생겨 정신이 나갔다 싶을 정도의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에 의미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 평소에는 쓰잘머리 없이 나오더니 오늘은 정확하게 치약이 딱 5mm만큼 적절하게 나와줬네~"

"어제는 화생방 훈련하는 것처럼 초미세먼지가 공기 중에 끈적끈적하더니 오늘은 동네 뒷산이 보이네~"

"와앗! 썸녀가 평소에는 2시간 동안 읽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59분 만에 읽씹하다가 하루 만에 답장이 왔네!"


이 정신나간 행복의미 부여는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익살스럽게 해석하는 데에 일조했다. 하지만 정말 화가나는 일이 하나 또 터지면 성미에 걸맞게 또 풀악셀을 밟아버리고 만다. 하아, 승질머리.


하지만 자잘한 화를 줄이는 이 헛짓이 또 쌓이고 쌓이면 습관이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습관 의존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처음만 힘들지 나중에는 헬렐레~ 하면서 매사에 웃는 밝은 사람이 되리라 굳게 믿는다.




우울이 올 때면,


제일 중요한 건 광합성이고, 두 번째가 웃음을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 할 것이다.


지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매일이 업무 지옥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그가 요즘 의미심장하게 우울이 찾아오고, 아침이 싫어진다고 할 때 적잖은 충격을 느꼈다. 첫째는 그가 그럴 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 그리고 둘째가 나도 비슷하게 변화해가는 것 같아 그 짜증나는 유사성에 몸에 미미한 경련이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다. 이 비타민 D3 결핍자들 같으니. 쌍으로 그냥.


우리는 서로에게 요즘 습관적으로 '침착해', '조급해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한다. 본인이 조급하기에 친구만이라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련다. "동요하지 말라! 두려워 말라!" 적진 앞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킹갓제네럴 이순신이 되어준다. 혹은 먹이 앞에서 안달하는 개를 다루는 강형욱 센세쯤 되려나. "기다려!"


그렇게 조급함을 내려 놓고, 화도 조금만 내기로 하고, 다가온 행복을 놓치지 않으며 오늘도 로또를 사러 갔다. 이번에는 수동선택도 좀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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