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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Jan 08. 2023

이번 해도 주옥같았어

하지만 빨랐죠

누구나 신년이 되기 전에는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현실에 쳐맞기 전까지는.......


나에게도 2022년 새해가 되었을 때 목표가 있었다.

... 아마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하루 전날에도 내가 뭘 먹었는지 생각해내려면 수 초가 걸리는 마당에 일 년 전에 소주와 함께 드링킹했던 계획(이었던 것)이 생각 날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아마'인 것이다.


가령 나는 요 몇 해의 숙원인 '다이어트'를 열망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뱃살은 두둑하니까. 누가 나이들면 쌓이는 덕(德)이라고 했던가. 그저 콜레스테롤 한가득 머금은 기름 튜브에 불과한 것을. 이 게으름과 배달음식이 초래한 튜브 덩어리를 육신으로 쫓아내고자 기원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성공의 길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우울한 원인도 다 이녀석 탓인 것만 같았을 것이다. 


나는 잘 안다. 일 년이 지나도 열망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고, 불만스러운 점도 거기서 거기이다. 나 자신도 뭔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멍한 눈으로 출근을 하고 오후 1시부터 퇴근을 미친듯이 갈망하며, 월요일 아침부터 주말을 계획한다. 서른 입구부터 맛탱이 가버린 간 때문에 술자리를 미친듯이 귀찮아하면서도 잔이 비면 조용히 자작하고 안주를 입에 쳐넣는 궁상맞은 내 입구멍이 서럽다. 


나의 연말과 새해는 참 아이러니했다. 11월부터 고맙게도 여러 군데에서 보자는 연락이 들어왔지만 곧 연말이니 스케줄이 다들 바쁠 테고, 새해 되고 보자는 서로 배려심 범벅의 계획을 주고 받기를 여러 번하다 보니, 정작 12월에 스케줄이 텅텅 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겼다. 나는 12월이 참말로 바쁠 줄 알았지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크리스마스는 더욱 참혹했다. 이러한 일이 스물 중반에 일어났다면 기필코 참사였겠지만, 나는 이제 그러려니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추웠다고만 말해두겠다.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 추웠다. 그 어떤 상대에게도 연락해서 만나자고 할만한 의지도 뚝 떨어지는 날씨였다. 물론 썸도, 썸 껀덕지도 없었지만 말이다. 


새해에는 연중 행사처럼 1월 1일이 생일인 친구의 생일을 챙겼다. 적당히 선물을 준비하고 적당히 케이크를 준비했다. 이 나이에는 뭔가 구색만 갖춰져도 다들 안분지족을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준비한 사람은 꿈도 안 꿨는데 지혼자서 감동을 먹고 만다. 이 자식은 확실히 비타민 D3가 필요하다. 차라리 영양제를 준비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놈 자취방에서 웃고 떠들다가 새해가 지났다. 아무 재미도 없을 만한 연말에는 한국의 월드컵 16강과 메시 형님의 우승이 소소한 이야깃거릴 제공해주어 심심치 않았다. 이제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도 하지 말란다. 알아서 챙기라고(실제로 한 말). 그래, 이제는 뭐 복까지 일일이 챙기냐. 그런다고 복이 온다더냐.


매번하는 드립이지만... 나는 2020년대에 진심으로 로봇이 군대갈 줄 알았다. 그러나 2023년 현재, 어떤 횟집을 찾아갔다가 로봇이 서빙을 하는 것까지 보고 한숨만 쉬었다. 나라지켜야지 아직까지 식당에만 있으면 어떡하니. 세상이 진실로 크게 바뀔 줄 알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검은 토끼의 해라는데, 그렇다면 토끼처럼 또 올해에도 빠르게 뛰어야 하는 해인가 싶다. 아니 뭐, 검은 토끼는, 그냥 귀엽다. 


지난해의 회고를 하자니 의미가 있고 없고를 셈하기 이전에, 기억이 없다. 정말 임팩트가 없었던 해였나 보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지 하고 각오를 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 써지는 이 글을 보고 있자니 이마에 손만 올라간다. 새해 덕담으로 6월부터 바뀌는 나이제도로 회춘드립이 오가는데 법적 나이와 정신 연령과 몸무게가 말해주는 신체나이가 다 다르니 나이가 스트레스 주는 것은 매한가지인 듯하다. 이런 와중에 신년 계획은 뭐냐고 또 물어들 오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이게 말한다고 응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번 해의 계획은 차라리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가슴에 품고만 있으면 또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 오히려 설렌다.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면 쪽팔려서라도 지키게 된다는 개소리를 누가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극도로 게으르면 그것조차도 무마된다는 사실을 정녕 몰랐을까. 나는 1년 뒤에 계밍아웃을 해보련다. 사실은 아무도 몰랐던 나의 원대한 계획은 이러했고, 이게 놀랍게도 지켜졌다고. 


작년보다 더 이기적으로 살고, 작년보다 더 '그것'만 바라보며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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