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오늘날 일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은 그저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일 뿐이다. 하루 먹을 빵을 구했다면, 나머지 시간은 노는 게 좋다. 살아남기 위해 의무를 다했다면, 이제 삶에서 더 중요한 무엇인가에 눈길을 돌려야만 한다. 은행 잔고에 신경 쓰면서 살았다면, 이제는 몸과 마음에 신경을 써라.
조지 쉬언 지음 / <달리기와 존재하기> 중에서
아물다는 아파트 상가 2층 맨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개업 초반 우리 가게의 위치를 알게 된 친구들이 걱정을 가득 담아 잘 지내냐며 안부를 건넸다. 코로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층에 차려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2층, 그것도 아파트 상가라니. 마치 자기 일처럼 근심 걱정하고 주위에 홍보해주는 그들의 마음씨가 고마웠다. 실제로 가게를 찾기 어려웠는지 방문하는 손님들한테서 종종 볼멘소리를 들었다. 간판도 작고 2층에 있다 보니 눈에 안 띈다는 것이었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도 새로 카페가 생긴 사실을 모르는 분이 많았다. 강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은 한 번 놀러 오기로 했다가 가게를 못 찾고 끝내 다시 돌아갔다 했다. 카페의 입지 조건을 따졌을 때 2층은 여러모로 안고 갈 리스크가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반면에 2층이기에 좋은 점도 존재했다. 우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우리 매장을 찾으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야 하는데, 2층 어딘가에 있는지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위로 펼쳐진 하늘까지 보게 된다. 현대 사회인들은 일터와 집을 숨 가쁘게 오가느라 마음 편히 하늘을 볼 시간이 없는 실정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장소도 찾을 겸 잠시나마 하늘을 올려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억지일까?! 또 하나는 한적하다는 점을 꼽겠다. 커피도시 강릉에는 바닷가를 중심으로 유명한 카페가 즐비하다. 강릉에 널찍하고 맛있고 전망 좋은 카페도 많은데 굳이 아파트 상가 2층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고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딱 맞는 공간이라 하겠다.
상대적으로 가게 진입 장벽이 높다 보니 매장이 붐빌 일은 거의 없다. 매장을 찾은 사람은 대부분 북카페와 상담 문의 같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방문했다. 삭막한 콘크리트 외벽과 2층 계단을 올라 매장까지 다다르면, 그곳에는 밖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큰 창과 목재 그리고 초록 내음이 풋풋한 잎사귀가 한데 어우러진 카페 공간은 맑은 햇살, 주황색 조명과 더불어 은은하고 밝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장으로 들어오면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 바 테이블에서 편히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쉬고 싶으면 잠시 고개를 들어 가로 90센티 세로 1.7미터의 직사각형 창문 너머로 풍경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바 테이블은 나 혼자 사색에 잠기기 좋은 장소이다. 꽃 피는 4월에는 지척에서 피는 벚꽃을 바라보고 길가에 핀 오색찬란한 꽃을 감상하기 좋은 시기이다.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음료와 함께 간식거리를 같이 내놓는다. 거기다 탈취제와 쪽지 하나를 고이 접어 건넨다. 쪽지 안에는 앞서서 아물다를 방문한 손님의 글귀가 쓰여있다.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구절, 다음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 혹은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적혀 있는데 쪽지를 받은 사람이 다음에 방문할 사람을 위해 글을 남기는 형식이다. 우리에게 쪽지를 건네받은 손님은 글귀를 읽고 호로록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창가를 바라본다. 나 자신의 세계에 빠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숨 가쁘게 뛰어왔으니 이곳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 잔잔히 흐르는 음악,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부우웅하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등 백색소음이 상념에 잠기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오늘도 여행객으로 보이는 손님 한 분이 블랜드 한 잔을 주문한 다음 창문 앞 바 테이블에 앉았다. 드립 커피와 쪽지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큰 가방을 가지고 오신걸 보니 여행 오셨나 봐요?!" 그러자 “예에.. 뭐..”라며 말끝을 흐리는 답장이 돌아온다. 대화보다는 자신의 세계에 들어가겠다는 암묵의 표시였다. “맛있게 드시고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나왔다.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음료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고, 책을 읽거나 창 밖을 바라보며 심연 속에 자신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카페를 이용하는 기준이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고르면 그만이다. 앞으로도 우리 공간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부디 많은 이곳에서 쉬면서 마음이 아물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