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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Jan 18. 2022

41) 북카페 이름은 '아물다'입니다.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창업을 생각했을 때 가장 많이 고민한 건 가게 이름이다. 가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은 간결하면서 알기 쉬울수록 좋다. 가능한 한 우리가 주제로 삼는 책과 커피, 그리고 상담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단어로 골라야 했다. 처음 머릿속에 떠올린 낱말은 치유와 힐링이다. 둘 다 의미는 확 와닿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키지 않았다. 우리 북카페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다가서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어감이 주는 벽이 너무 높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 단어 다 사설 상담 센터라든가 공공 기관에서 사용할 법한 이미지였다. 게다가 사회에서 이미 숱하게 사용한 점도 마음에 걸렸다. 가게 이름이라 하면 신선함과 특색을 갖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데 이래서는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에게 잊힐 모양새였다.


 좀처럼 가게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며칠이 흘렀다. 머릿속으로 치유, 힐링, 치료, 회복 같은 단어를 갖고 요리조리 굴려보았다. 'XXX 힐링 북카페' '북카페 상담소 치유' '마음을 회복하는 북카페.' 등 앞에도 붙여보고 뒤에도 붙였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뭐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예 확 하고 아예 단어를 뒤틀어 봐?! 응 잠깐만 뒤튼다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그 방법대로 시도해 보았다. "치유(治癒)는 한자어고, 힐링(Healing)응 영어에서 온 거잖아? 그렇다면 순수 우리말로는 뭐였더라? 아물... 다? 아물다. 바로 이거야!"


 아물다, 국어사전에서 나오는 뜻풀이로는 '부스럼이나 상처가 다 나아 살갗이 맞붙다.'라는 뜻이다.

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원 뜻은 [아물다, 여물다, 온전해지다]의 의미를 가진다.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그동안 머릿속에서 엉킨 실타래가 스르륵하고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간결하고 가진 뜻도 명확하고 무엇보다 우리 가게의 정체성과 딱 들어맞았다. "나(我)에게 안부를 물어보다." 같은 뜻으로도 응용해도 좋아 보였다. 새미에게 물어보자 "오오~ 너무 좋다! 그 단어는 어떻게 생각해 낸 거야?!" 하며 기뻐했다. " 나는 허리춤에 손은 얹으며 "그럼. 나 이래 봬도 번역가니까."라며 한껏 으스댔다. 그렇게 가게 이름을 정했다.


 오픈 날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시공은 다 끝났고 앞으로는 우리 몫만 남은 상태. 남은 기간까지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건물 외벽에 설치할 간판 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추가로 입간판을 주문했다. 이웃 학원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음료에 대해 설문 조사하면서 메뉴를 추렸다. 어느 날은 우리 카페 오픈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KT 직원이 방문했다. '아니, 상가건물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공사하고 있었는데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물어봤더니 주변 지인이 뀌뜸해 줬단다. 덕분에 무선 인터넷과 방범 카메라도 달았다. 은행에서 사업자 통장도 만들었다. 홈택스에 신고하기 쉽게 입금용과 매출용을 각각 하나씩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건소 위생과에서 영업 신고를 마쳤다. 곧바로 세무서로 가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이로써 오픈 전에 서류 작업은 모두 끝! 이제 가게만 열면 된다!


 오픈까지 1주일. 지난주 매장으로 와 치수를 재 간 커튼 업자 분이 창문에 달 커튼을 가져오셨다. 다이소에서 사놓은 철제 압축 커튼봉에 커튼들을 넣어 그대로 유리창 옆 벽면으로 가져간다. '달카닥 달카닥 딱! 압축봉이 벽면에 딱 붙었다. 양 커튼의 아랫부분을 끈으로 묵자 양갈래로 주름진 흰색 커튼의 모습이 드러났다. 커튼이 없을 때와 비교해 매장이 한결 예뻐지고 부드러워졌다. 연갈색 원목 책장과 테이블, 그리고 흰 바탕의 벽과 조화를 이뤄 매장을 단아한 분위기로 꾸며 주었다. 덕분에 카페 분위기가 흠씬 풍겼다.


 오픈 2일 전. 식기며 재료며 그동안 주문한 물건은 모두 다 도착했다. 네이버 페이로 구매한 유리컵과 잔도 하나하나 씻어 말렸고, 카페 뮤제오에서 주문한 각종 파우더와 시럽도 바 수납장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이제 남은 일은 메뉴 연습뿐이다. 오늘도 매장에 나오자마자 원두를 꺼내 커피를 내렸다. 레시피 연습을 한 원두는 고소하고 단맛이 나는 블랜드와 견과류의 고소한 느낌이 나는 브라질 옐로 버번, 그리고 향긋한 꽃향이 피어나는 에티오피아 원두 이렇게 세 가지이다. 블랜드는 이제 어느 정도 추출 레시피를 잡았다. 하지만 브라질과 에티오피아는 약배전~약중배전으로 로스팅했기 때문인지 추출 레시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아리송한  부분은 현욱 씨한테 조언을 구하며 다시금 진행했다. 분쇄도와 원두 투입 양, 물 붓는 양을 조금씩 바꿔가며 대략적인 레시피를 잡을 수 있었다. 이로써 준비는 모두 끝났다.


 오픈 당일 매장 문을 열면서 나 스스로에게 혼잣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북카페 겸 상담 공간 아물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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