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현 Jan 13. 2022

39) 침수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시공 10일째. 오늘은 목수 님이 다른 일정으로 쉬는 날이다. 작업은 없었지만 대신 목수 님이 지시하고 간 일이 있어 나 혼자 매장으로 나왔다. 어제 산 8미터짜리 공사용 비닐을 바닥에 깔고 그 위로 나무판 여러 장을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는 붓에 원목용 오일 스테일을 묻혀 나무 군데군데를 빠짐없이 골고루 바랐다. 2미터 가까운 나무 상자와 나무판이 여러 개 있다 보니 칠하고 말리고 다시 칠하는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2번에 걸쳐 바른 다음 뒷정리까지 마치자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으아, 배고파!' 이제 하루 동안 건조한 다음에 사포로 문지르고 코팅만 하면 끝이다!! 며칠 후 반짝반짝하고 매끈해질 나무판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매장을 나왔다. 


 비록 작업이 없다 해도 집에서 벌러덩 자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매장 오픈 전에 앞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해놓아야 한다. 오늘 할 일은 바로 스콘 연습! 새미랑 카페에 어울리는 간식이 뭐가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나온 메뉴이다. 점심을 먹고 곧바로 스콘 만들기에 돌입했다. 주방 아래 수납장에서 중력분, 박력분 그리고 베이킹파우더와 설탕 가루를 꺼내고, 냉장고에서 생크림과 우유, 버터를 꺼내 서로 섞었다. 스콘 종류에 따라 재료랑 비율을 다르게 설정하고, 반죽 시간을 몇 분 안에 끝내며, 숙성하는 시간, 굽는 온도와 시간 등 하나하나 확인하며 진행했다. '띵~~!!' 청아한 소리와 함께 스콘이 다 구워졌다. "어디 보자 어제 건 겉이 바삭했지만 안은 덜 익어서 퍽퍽한 밀가루 맛이 났었는데 오늘은 잘 구워졌을까?! 짜잔~!! 응? 스콘 색이 왜 이렇게 진한 거지? 10도만 올렸을 뿐인데 좀 더 낮춰야 했나? 아니 시간을 줄여야 했나?" 


 외관 색이 진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어제보다 맛도 식감도 좋아졌다. 앞으로 조금만 더 보완하면 될 듯하다. 이제 이 스콘을 사람들에게 드리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어제는 새미네 직장 동료에게 줬으니, 오늘은 현욱 씨한테 선물해야지.' 드립 커피, 카페 라테 같은 음료도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새미를 마중 나갈 시간이 부쩍 다가왔다. 부랴부랴 스콘을 봉지에 담아 데자뷰 로스터리로 향한다. 집을 나서서 데자뷰에 도착하자 시간이 5시 55분. 새미가 퇴근하기까지 5분 남았다. 마중 가는데 늦겠다는 생각에 현욱 씨한테 스콘만 건네고 얼른 차에 올라탔다. 


 몇 분 후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에서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하고 진동이 울렸다. 새미한테 온 전화인 듯싶었다. "아이고, 아직 도착하려면 5분은 더 걸리는데." 좀 더 천천히 나오라고 말하려고 왼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든 순간, 의외의 이름이 발신자 표시에 떠 있는 걸 발견했다. 다름 아닌 아파트 경비실장한테 걸려온 전화였다. '경비실에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우리가 먼저 전화 걸지 않는 이상 그쪽에서도 연락 안 할 텐데?!'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XXX 이시죠? 지금 어디세요? 빨리 집으로 와요. 지금 현관문 아래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어요. 지금 당장 오세요!!" 잘못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다. 재차 확인했는데 내가 맞았다. '뭐?? 집에 물이 샌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처음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저층도 아닌 우리 집이 침수라니? 어째서?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경비실장의 다급한 말투에 일단 알겠다며 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네 알겠어요. 지금 밖이니까 금방 들어갈게요."라고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야?!'


 새미가 근무하는 곳에 다다르자, 새미는 이미 도로변으로 나와 있었다. 차 문을 열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다급한 어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앞집 아주머니께서 전화 주셨어! 우리 집 문 틈 사이로 물이 콸콸 새고 있대!!”

“나도 들었어. 아니 그게 왜 새는 거야?”

“글세 공용 배관이 터졌다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어.”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네. 일단 가 보자”

 집으로 가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렸다. 집 안에 물이 넘쳐흘러 현관문을 너머 계단까지 흘러내리는 광경을. 하지만 도무지 상상이 안 갔다. 저층도 아닌 우리 집이 홍수가 나다니 말이다. 우리 아파트를 고른 이유 중 하나가 고도가 높아 침수 걱정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말이다. 초조한 마음이 몸으로 전해진 걸까. 페달을 밟은 왼발에 더욱 힘이 실렸다. 


 10분 후,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배관에서 터졌다는 물이 아파트 계단을 흘러 공용 현관문 바깥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주민들이 다들 나와 쓰레받기라든지 빗자루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순간 직감했다. ‘큰일 났다.’


이전 01화 38) 자금이 부족하면 몸으로 라도, 일일 조수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