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현 Jan 11. 2022

38) 자금이 부족하면 몸으로 라도, 일일 조수 생활.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2021년 새해가 밝았다. 2020년 새해 일출을 새미와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봤는데, 올해도 다른 곳으로 안 가고 집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옷을 두껍게 껴 입은 다음 새미와 뒷산을 올랐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오른 상태였지만, 다시 한번 해를 향해 새해 포부를 다진다. '올해는 도전하는 해입니다. 지금껏 항상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지요. 불안한 점 투성이지만 부디 원하는 바 이룰 수 있게 도와주세요.' 산을 넘어 한 바퀴 빙 동네를 걷고 돌아와 점심밥을 준비했다. 떡국 대신 전날 카페 투어를 하며 사놓은 치아바타, 바게트, 스콘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굽고 데자뷰 로스터리에서 사 온 원두로 커피를 내렸다. '탁' '탁' 식탁 위에 빵과 커피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베란다 너머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바삭한 빵과 향미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공사 생각에 뇌가 끊임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내일은 중고 냉장고를 사고, 모던 하우스 가서 포크랑 수저 같은 집기를 사야지. 제빙기는 다른 매물이 없다면 삼진에서 본 모델로 사야겠다. 다음 주부터 공사 시작이니까 그전에 견적서 내용 다시 한번 확인도 해보고.’ 가족과 꿀맛 같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찾아왔다. 목수 님께 새해 인사를 건네며 작업에 차질 없도록 물심양면 돕겠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이번 공사는 에어컨, 간판, 전기 작업 같은 필수적인 일을 제외하고 목수 님이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할 예정이다. 왜냐하면 자금 사정이 빠듯하니까. 시공 외에도 그라인더, 냉장고, 제빙기 그리고 잡다한 집기들까지 살게 많은데. 계산해 놓은 예산을 초과하면서까지 추가 인력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 몸이 고생하더라도 초기 비용을 줄여야지.'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시공 현장 경험은 거의 없었으나, 하루 이틀 허드렛일을 하다 보면 곧 적응하리라 판단했다. 


 시공 첫날 진행한 일은 철거였다.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필요 없는 부분을 떼내는 작업이다. 제일 먼저 카운터 공간에 놓인 세면대를 떼어냈다. '휘리릭 휘리릭 딱!' 세면대는 목수님이 몇 번 만지자 간단히 떨어져 나갔다. 이제 이 빈 공간에 싱크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나는 떼 낸 세면대를 두 손으로 건네받아 바깥의 트럭으로 실어 담았다. 그다음은 카운터와 북카페를 가로막는 가벽에 사각형 구멍을 뚫는 작업이었다. 목수 님이 가벽에 연필과 자로 자를 부분을 한 차례 주욱 긋고 절단기를 가져와 가벽을 잘랐다. '위이이이이잉 캉! 캉!' 하고 파열음이 매장에 울려 퍼졌다. 석고가루가 우수수 아래로 떨어지고 내부 천 조각과 알루미늄 기둥들이 절단기에 의해 사정없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목수 님이 휴식을 가질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주워 트럭으로 날랐다. 어느새 상반신이 석고 보드 가루로 범벅이 되었다. '작업복을 입고와 다행이지. 안 그럼 옷 하나 버릴 뻔했어.' 가벽에 구멍을 뚫은 후에는 그 옆에 문짝도 뜯어냈다. 이곳도 학원에나 있을법한 문 대신 오픈형으로 탁 트이도록 문틀만 설치할 계획이다. 철거하고 쓰레기를 옮기고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간다. 하루 일과가 끝나갔다.


 둘째 날은 철거한 부분을 나무로 메우는 작업이었다. 작업장에서 직접 나무를 가져온 목수 님은 현장에서 하나하나 치수를 재면서 잘랐다. 재단 작업이 끝난 후에는 나무판을 철거한 부분에 대고 그 위로 못을 박았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무판과 전동 드릴 등 필요한 물품을 그때그때 건넸다. 2시간 만에 가벽의 빈 공간과 뜯어나간 문짝에 예쁜 원목 판이 씌워졌다. 꼼꼼하게 봐주신 덕분에 거의 오차 없이 들어맞았다. "어때? 딱 맞지? 나 고용한 거 운 좋은 줄 알라고." 정교하고 빠른 작업 속도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목수 님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천군 만마나 다름없는 분이다. 첫날 뜯고 자른 부분을 연갈색의 미송으로 채우자 단숨에 북카페 같은 분위기로 뒤바뀌었다. 오픈형 문에 가벽을 사각형으로 크게 뚫다 보니 마치 한 공간으로 이어놓은 것 같았다. '와아~!' 벌써부터 카페 공간이 완성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이 나서 두 공간을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보조 역할을 잘했다 말할 수 없었다. 공사일을 진행하면서 군데군데 놓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조의 역할이란 목수님이 그때그때 원활하게 작업하도록 일손을 거드는 역할인데 모르는 게 많아 하나하나 물어보며 진행해야 했다. 작업 속도가 더뎌지고 에너지도 더 소모했다. 목수 님이 답답하신지 한 숨을 쉬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도우려 했으나 계속해서 서투른 점이 나왔다. 종종 일머리가 없다며 꾸중도 들었다. 그때부터 오기가 들었을까? 목수 님의 손짓하나 표정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점점 손발이 맞아갔다. 목수님도 "이제야 좀 쓸만해졌군. 진작 그렇게 하지."라며 칭찬해주셨다. 무뚝뚝 한 말이었지만 인정받은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사이 공사는 중반을 넘어갔다. 전기 배선을 바꾸고, 천장 조명에, 수도도 싱크대와 카페 쪽으로 이어지도록 배관을 설치했다. 모든 일이 착착 순조롭게 진행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