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다의 첫 손님은 화분이었다. 오픈 3일 전 입암동에 살고 계신 정아 이모네가 구즈마니아 화분 2개를 손에 들고 매장으로 오셨다. 이를 신호탄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꽃을 보내왔다. 오전에는 정환이 형과 친구들이 부친 해피트리가, 12시를 넘어서는 새미의 중학교 동창 다솔 씨가 보낸 선인장과 고무나무가 손수 쓴 쪽지와 함께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하슬라 러닝 크루 친구들이 보낸 꽃들이 속속 배달됐으며, 다음날에는 매장을 소개해 주신 부동산 사장님이 직접 화분을 들고 와 "떼돈 버세요." 하며 건네주셨다. 그 후로도 화분 선물은 줄줄이 이어졌다. 7~8개 더 받고 나서야 끝이 났을까. 개업 축사 선물로 꽃을 많이 받을 것 같아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는 일찍부터 꽃을 보내지 말라고 말해두었었다. 미리 말을 해 놓았길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매장 안이 온통 화분 밭으로 가득 찰 뻔했다.
그사이 사람 손님도 방문했다. 하슬라 러닝 크루 크루원이자 독서 모임 '이음'에서 활동하는 종환 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점심 식사 후 동료 직원들 음료까지 10잔을 주문했는데 핸드드립으로 내리다 보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첫 손님인 데다 오랜 시간 묵묵히 기다려 준 게 고마워 봉투에 스콘 두어 개를 담아 건넸다. 종환 씨를 배웅하고 혼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개점 손님부터 10잔을 팔았다. "좋아 시작이 아주 좋아."
한 동안 호황이 계속됐다. 같이 달리는 러닝 크루 크루원들부터, 목수 님을 소개해준 구커피 사장님, 멘토이자 커피 원두를 공급해주는 데자뷰 로스터리의 현욱 씨, 그리고 우리에게 나지와 바미를 만나게 해 준 임보자 승범 님과 혜영 님까지 강릉에서 알고 지낸 많은 사람이 매장을 방문해 주었다.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도 하나 둘 놀러 왔다. 바로 옆 초당성당에서 수녀님, 신부님을 비롯해 우리가 이용하는 비비 헤어숍 사장님과 그 손님들, 그리고 같은 동 아파트 주민 분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이 매장을 보러 왔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사람이 몰려 손님이 기다리는 경우도 으레 생겼다. 아직 일이 익숙지 않다 보니 마음이 급해서 그만 원두가루를 쏟은 적도 있다. 계량을 잘못해 다시 처음부터 만든 음료도 있다. 매일 허둥지둥 댔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우리가 꾸민 공간에 사람들이 온다. 그것도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말이다. 매장이 2층에 위치해 사람들이 찾기 힘들거라 생각했다. 아파트 상가에 카페를 열어서 사람들이 안 봐줄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이 기우였던 것 같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매장을 꾸려나갈 수 있을 듯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2주가 지나기 전까지는.
3주째에 접어들자 이제까지의 일이 전부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가도록 매장을 찾는 손님이 없었다. 문득 가게를 준비할 때 주위에서 해준 조언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새로운 걸 좋아하다 보니 신규 매장을 오픈하면 3달 정도는 손님이 꾸준히 와. 하지만 그다음 뚝 끊기지. 그럴 때를 대비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해." 먼저 창업한 선배들이 귀에 박히도록 말했기 때문이었을까? 초반에 손님으로 붐볐을 때에도 ‘이것도 잠시겠지? 한두 달 지나면 슬슬 잦아들겠지?' 하고 나 혼자 예상했더랬다. 어느 정도 줄어드리라고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빨랐다. 오픈한 지 이제 겨우 3주 째인데, 마치 썰물 빠지듯 손님들이 빠져나갔다. 아니 썰물이라면 다시 밀물이 올라올 때를 기다리기라도 하지. 현재로서는 손님이 올 낌새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은 한 두 팀 정도 될까? 여전히 거의 없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에 들려 귀를 쫑긋 세웠다. '타닥 탁 스윽'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갈아 신는 소리가 들렸다. 옆 학원 학생이다. 이번에도 손님이 아니었다. 어깨에 들어간 힘이 맥없이 풀렸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안 오는 걸까?! 아직 상담실을 오픈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북카페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는 거야?? 중고책 위주인 북카페라 사람들의 관심을 못 끄는 건가?' 수많은 잡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초반에 과했던 의욕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신감이 꺾였다. '그래, 오늘도 손님이 없구나. 내일도 아마 오늘과 비슷하겠지.' 점점 나쁜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어졌다. 안돼 안돼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으면 안 돼!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눈에 띌 수 있도록 상가 1층 현관문에 <북카페 상담 아물다> 상호를 큼지막하게 붙였다. 그리고 1,2층 복도 청소를 실시했다. 먼저 먼지를 쓸고 대걸레를 물에 적셔 바닥을 닦았다. 화장실도 청소도 빼놓지 않았다. 락스를 뿌린 다음 기다란 호스를 이용에 대대적으로 물청소를 실시했다. 혹여나 복도가 어두워서 손님이 안 들어올까 봐 항상 불을 켜 놓았다. SNS에도 게시물을 꾸준히 올렸다. 쉬는 날을 제외하고 하루도 안 거르고 게시물과 스토리를 업로드했다. 메뉴 이야기,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 책 이야기를 1~2시간 문장을 다듬어 글로 써냈다. 글에 정성을 쏟을수록 사람들의 반응도 좋은 게 느껴졌다. 위 행동들이 효과를 보였는지 조금씩이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반응했다. 새로 생긴 북카페가 어떠한 곳인지 , 궁금해하는 몇몇이 직접 발길을 옮겨 찾아오기 시작했다.
매장이 다시금 활력을 띄었다. 내내 초초해 한 나도 겨우 숨통을 트여 놓는다. 처음 우리 공간을 기획할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나가오카 겐메이가 쓴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를 읽으며 그와 같은 가게를 만들고 싶어 했었지. "가치를 전하는 가게는 불편한 장소에 있는 편이 좋습니다. 가게 대표의 정체성이 뚜렷하다면 가게가 어디에 있든지 의식이 높은 사람들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가 한 말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견지해 나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까?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이 최선인 듯 하다. 우리의 향기가 더더욱 퍼져 나가도록 오늘도 바 카운터에 서서 음료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