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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Jan 23. 2022

44) 우리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우리들의 일상을 기억하기 위한 용도로 블로그를 개설했다. 둘이서 번갈아 글을 올렸는데 강릉 생활, 맛집, 볼거리, 번역, 책 서평 등 강릉에서 누린 다양한 경험을 주제로 삼았다. 매주 1~2편씩 1년 가까이 꾸준히 글을 썼다. 그러자 강원 미디어 콘텐츠 협동조합이란 곳에서 우리를 향해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서울을 떠나 강릉살이를 선택한 이유를 듣고 싶었단다. 아마 우리같이 이주해 온 사람을 통해 지방에 새로운 흐름이 생기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로 강릉살이에 관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강릉에서 보내는 일상 외에도 강릉살이를 결심한 이유와 계기, 직장 구하기와 거주지 물색하기처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항 전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어떤 분은 궁금증이 일었는지 질문사항을 추려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침 우리도 1년 동안 밟아온 시간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질문지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답했다. 그와 동시에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강릉 이주 계획 PPT>를 무료 나눔 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댓글이나 쪽지를 보내며 문의를 해 왔다. 족히 20~30명에게 보낸 듯하다. 그들이 보내온 관심에 동질감을 느꼈다. 동시에 위안을 받았다. '우리만 유별난 생각을 한건 아니었구나. 지방에 살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그로부터 수개월 후, PPT 자료를 받은 사람 중 몇몇한테서 강릉으로 이주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평소처럼 오전에 스콘 반죽을 마치고 뒷정리를 할 때였다. '끼익' 남녀 손님 한 쌍이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동네 분이신가? 아니 그러기엔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렇다면 관광객이신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달은 채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매장은 처음이신가요?!" 그러자 키가 큰 남자분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PPT 자료 보내주신 도락입니다. 두 분 덕분에 저희도 강릉으로 왔습니다." 


 도락 님과 그의 배우자인 소돌 님은 예전부터 서핑을 즐긴 부부이다. 인천에 주거지를 두고 주말이 다가오면 양양으로 떠나 그곳에서 캠핑을 하거나 차박을 하며 쉬었다 한다. 거의 매주마다 영동 지방을 오가다 보니 어느 날은 둘이서 "이렇게 시간과 돈을 들일 거면 차라리 강원도에서 사는 게 낫겠어."라며 이야기했다고. 그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마음속에서 강원도 이주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인천을 떠나기에는 강릉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막막해하던 참에 우리가 쓴 강릉 이주 이야기를 접했다. 그리고 비슷한 나이대에 강릉에서 사는 우리를 보며 이주할 결심을 세웠다 한다. 특히 우리가 만든 PPT 자료가 장인 장모님을 설득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지금껏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기만 했다. 나보다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바라보며 줄곧 달려왔다. 그들의 삶을 뒤따라 가고 싶었고, 그들이 남긴 그림자를 따라가면서 마음속으로 그리는 이상향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만족스러웠다. 그러자 어느 시점부터 나만의 가치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생의 선배들과 비슷하면서 조금은 다른 길. 그 과정에서 새미를 만났다. 내 깐깐하고 규칙적인 성격과 그녀의 자유 발랄하고 유연한 성격이 만나 다채로운 강릉 생활을 누렸다. 그리고 우리의 강릉 생활을 보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내가 수많은 책과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아 강릉으로 왔듯이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보고 마침내 강릉까지 온 것이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피부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두 분은 현재 주문진에서 지내고 있다. 강릉으로 오면서 초반엔 걱정도 많았지만 막상 와 보니, 왜 이제야 왔냐고 느낄 정도로 강릉 생활이 너무 좋다 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전세가 아니라 아예 집을 사서 왔다고. 아니 뭐라고? 우리는 월세냐 전세냐 주판 두드리듯 노심초사하며 골랐는데, 그렇게 쉽사리 매매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강릉 생활은 먼저 시작했지만 도리어 이제는 우리 쪽에서 조언을 구해야 할 상황이다. "매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면 될까요?" "강릉에 눈여겨본 부지라든가 있을까요?!" "주위에 괜찮은 매물 소식을 들으면 저희한테도 꼭 좀..."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더라더니. 아, 물론 순수한 마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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