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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Jan 30. 2022

46) 상담실 오픈 그리고 완전체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6월 마지막 날 출근을 끝으로 새미가 퇴사했다. 강릉에서 다닌 첫 직장이자 1년 반 동안 일해온 센터를 그만두고 아물다의 상담사로 데뷔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우선 반년 동안 창고로 활용한 상담실부터 정리했다. 테이크아웃용 컵, 뚜껑을 담은 상자와 나무칠에 쓴 스테인과 오일을 집에 가져다 놓고 흙모래와 먼지, 커피 가루로 뒤덮인 바닥을 쓸고 닦았다. 얼추 방청소를 끝낸 다음에는 곧바로 상담실 준비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자아 통제력을 발달시키며, 다양한 면에서 치료적 요소를 갖춘 놀잇감부터 먼저 구비했다. 그 외 보드 게임과 모래놀이 세트도 사들였다. 바닥에는 매트를 깔아 쿠션을 주었으며 흰 벽에는 벽걸이 에어컨을 달았다. 퇴사한 기쁨을 미처 못 누리고 준비 작업에 몰두했다. 


 그중 가장 큰 난관은 뭐니 뭐니 해도 책상, 수납장, 진열장 같은 가구를 구매하는 일이었다. 진열장은 향후 들여올 장난감에 따라 위치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제품을 골라야 한다. 구하는 방법은 직접 조립하는 경우와 업체에 주문 제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선 이케아 온라인몰에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진열장을 찾았다. 가구들을 모두 담자 1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적당해 보였다. 다음으로 주문 제작하는 비용을 확인하기 위해 시내에서 가장 크다는 싱크대 업체를 찾아가 견적을 요청했다. 직접 조립할 때보다 비쌀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2.5~3배나 될 줄이야.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혹시나 싶어 다른 업체에도 알아봤으나 마찬가지였다. 조립은 수고스럽다는 면에서 주문 제작은 가격이 비싸다는 면에서 둘 다 일장일단을 갖고 있었다. 고민 끝에 초기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택했다. 인터넷으로 구매 못한 품목은 나중에 이케아 매장을 직접 찾아가 실어왔다.


 상담실 오픈 시기는 8월 10일 즈음으로 잡았다. 처음에는 다소 시간의 여유를 두고 오픈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갑작스럽게 상담 관련해서 문의를 주셨다. 그리고 해당 문의는 예약으로 이어졌다. 8월 5일이었다. 예약이 잡힌 이상 그에 맞춰 일정을 앞당겨야 한다. 7월 말에 이케아에서 구매한 진열장과 수납장 택배가 도착해서 곧바로 박스를 뜯어 조립을 시작했다. 일요일 마감 후, 월요일 휴일, 그리고 화요일 마감 후까지 3일 내내 가구들을 조립하면서 오픈 일정을 앞당겼다. 상담실 오픈과 동시에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러자 건너 건너 소문을 듣거나 SNS 게시물을 보신 분들이 상담 예약 문의를 주셨다. 기대 이상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많은 부모가 관심을 갖고 정보를 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된 점도 상담 문의가 많은 요인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렇게 오픈 전부터 문의를 받게 된 이유로는 평소 SNS에 꾸준히 게시물을 올리고 새미가 놀이심리상담사, 청소년상담사, 임상 심리사 같이 상담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었으리라. 그리고 놀이치료라는 상담 기법을 채택한 점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놀이치료란 놀이를 매개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발달을 촉진하는 방법이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자신이 경험한 세계와 감정, 욕구, 사고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인 동시에 타인과 외부 환경에 대해 배워나가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새미 같은 놀이치료사는 아이와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부모, 아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강릉에 상담 센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발달 센터, 언어 치료, 음악 치료, 미술 치료, 모래놀이 치료 그리고 정신과 병원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센터에 대한 정보를 알기가 어려웠고, 상시 공고가 나는 언어치료사에 비해 놀이치료사 구인 공고는 없다시피 했다. 새미도 늘 그 부분을 아쉬워했다. 놀이치료사를 필요로 하는 센터만 있다면 경력을 살려 분당에서처럼 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기 능력을 십분 활용하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만들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참에 아예 직접 개설하기로 결심했다. 가게 이름을 아물다로 정하고 그 아래 ‘책과 커피 그리고 상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면서 말이다.


 상담실을 오픈하면서 서가에 진열한 도서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동안 여러 분야를 두루 갖춘 종합 서점처럼 책방을 운영했다면, 이제부터 범위를 확 좁혀 심리 관련 분야만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한 것이다. 심리 관련 책 수량을 늘리고 나중에는 <마음처방전>이라는 코너도 따로 만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가게 이름, 북카페 공간, 그리고 상담 이 세 가지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책과 커피 그리고 상담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북카페 아물다. 드디어 완전체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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