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두 분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아물다는 둘이서 같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달리기를 하러 나가거나 동네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않는 이상 평소에는 24시간 붙어있다시피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연민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어우 난 힘들 것 같아.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싸우지 않겠어?”
“그게 오래갈까? 며칠만 있어도 다투고 그럴걸?”
“집에서도 매장에서도 줄곧 같이 있는 거잖아? 난 못해.”
과연 그럴까? 7월부터 함께 매장에서 지냈지만 우려와 달리 다투는 일은 드물었다. 초반에는 “이건 이렇게 하는 거 아냐? 저건 그렇게 하는 건 어때?”하면서 투닥거린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보면 서로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참견했기 때문이지, 내외적인 일로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감정을 푸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북카페는 내가, 상담은 새미가 담당하면서 업무 영역을 명확히 구분했다. 그러자 언쟁할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영역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의 업무 스타일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부부가 매장을 운영하면 다툼이 잦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추측하건대 영역이 겹쳐서가 아닐까? 둘이 같은 일을 해도 서로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급기야 말싸움까지 번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행이다. 업무 자체가 나뉘다 보니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나한테 상담 문의가 들어오면 처음에만 설명드린 후 자세한 내용은 새미에게 토스하고, 새미가 책이나 커피에 대한 문의를 받으면 내게 토스하듯이 말이다.
평소처럼 가게 문을 연 날이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새미는 매장에 놓인 바 테이블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4명의 단체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음료를 주문했다. 새미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읽던 책을 덮고 카운터로 들어와 카페 일을 거들었다. 작업대 위에 트레이를 놓고 그 위로 컵받침과 냅킨, 빨대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우유 거품기에 담았다. 손님 한 분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는 입을 뗐다.
“부부이신가요? 두 분이 같이 운영하세요?”
“네? 아 맞습니다. 저는 주로 북카페를 담당하고요. 아내는 옆에서 상담실을 운영합니다. 여유가 있을 때 이렇게 도우러 와 줘요. "
"어머, 그렇구나. 두 분 일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포근한 인상이 이 공간의 분위기와도 어울리고요. 앞으로도 사업 건승하시길 바랄게요."
예상치 못한 덕담에 그만 멋쩍은 미소로 대답했다. 평소에는 칭찬을 받아도 매장이 밝다든가, 인테리어가 깔끔하다든가, 나무 향기가 난다든지 주로 가게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 대상이 되자 어째서인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물다' 전체가 칭찬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좋은걸 넘어 점차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느 날은 남자 손님 한 분이 홀로 매장을 찾았다. 30대 초중반 정도였을까? 나보다는 조금 어려 보였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온 강릉 여행 마지막 날, 기차 탑승 시간을 미루고 우리 매장을 찾았다 한다. 북카페와 상담을 같이 운영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는데, 우리 장소에서 그동안 꿈에 그리던 모습을 보았다고. 그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였다. 여행 끝자락에 우리 공간을 발견했는데 마침 아내 분의 직업이 심리상담가인지라 가기 전에 꼭 한번 들르고 싶었다 한다. '그래서였구나. 기차 시간을 미뤄서까지 온 건 그 때문이었구나. ' 그는 내게서 쪽지를 건네받은 다음 자신들도 언젠가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 같은 장소를 만들고 싶다 했다. 각자 가진 능력을 활용해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평안을, 누군가에게는 몸의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말이다.
또 어느 날은 여성 손님 한 분이 인스타 메시지로 연락을 취해왔다. 강릉으로 여행 온 그녀는 대뜸 커피 클래스와 나 찾기 클래스를 문의했다. 아니 그런데 잠깐만. 커피 클래스는 예전부터 해 와서 괜찮았지만 나 찾기 클래스는 뭐지? 주최자인 우리가 처음 듣는 단어인데?! 우여곡절 끝에 그 말이 심리 검사를 가리킨 것이라는 사실임을 알게 된 우리는, 다음날 매장에서 커피 체험과 TCI(기질 및 성격 검사) 해석상담을 진행했다. 약 3시간 동안의 모든 체험을 마친 손님은,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우리 쪽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을 꺼냈다.
"혹시 두 분 그 모습 그대로 사진 찍어도 될까요?"
"네, 물론이지요."
"네 그럼 잠시만요. 사진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와 두 분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 같아요."
"예? 하하하 그런 말은 처음 들어요. 감사합니다."
글에는 글쓴이의 평소 생각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평생에 걸쳐 쌓아 온 사고방식이 글 안에 응축돼 있기 때문에, 한 두 장만 읽어도 글쓴이의 의도를 쉽게 알아챈다. 마찬가지로 매장에도 가게를 운영하는 이의 성격이 반영된다. 가볍게 매장의 모습을 훑어보는 것만으로 운영자의 평소 생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매장을 다녀간 손님이 우리에게까지 칭찬의 말을 건네는 건 우리 존재가 매장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매장 이름부터 시작해 공간을 이루는 구성, 디자인, 분위기 그리고 우리 자신까지. 포근하고 상처가 나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일관되게 녹아든 덕분에 많은 이들로부터 덕담을 건네받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두 분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은 단순히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살아온 삶 전부를 인정받은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36,7년 동안 지내온 삶의 태도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 새미와 함께 아물다를 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