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4부 완결)
"끼이이이이익~"
"볼륨이 너무 커요. 좀 낮춰주세요."
"기이이이이~"
"이 정도면 될까요?"
"네 좋습니다."
12월 3일 금요일. 매장은 지금 '여행자 카페'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오전부터 강릉 예총에서 음향기기 설비 팀이 방문해 각종 장비며 선을 매장 안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라이브 하우스에서나 보던 음향기기와 건반, 마이크, 사람 키보다 더 큰 스피커가 줄줄이 들어왔다. 거기다 자료를 띄우기 위한 빔 프로젝트와 스크린까지. 20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이렇게나 많은 설비가 들어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오후는 매장을 닫고 대신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4시에는 정혜윤 작가의 북토크가, 저녁 7시부터는 한보나 싱어송라이터의 미니 콘서트가 잡혀있다. 그를 위해 일찍부터 장비들을 가져와 선을 잇고 세팅을 하면서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다.
10월 중순 친구와 지인의 권유로 '강릉 여행자 카페' 사업 신청서를 제출했다. 여행자 카페란 강릉시와 강릉예총에서 주관하는 사업으로 카페를 매개로 관광객 또는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했다 한다. 강릉에 소재한 카페 중 10곳을 선정해 해당 공간에서 체험 프로그램 및 공연, 강의를 진행하는데 감사하게도 아물다도 이름을 올렸다. 평소 초당의 문화 공간이 되기 위해 다양한 체험과 강의를 진행하며 부단히 노력하고 있던 때였다. 행사 진행은 전부 주최 측에서 준비한다는 말에 그 즉시 신청서를 다운받아 모든 항목을 빈 곳 없이 채워 넣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3시 반. 북토크 강연 시간이 다가오자 참가자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예총 직원이 일일이 열 체온계와 손 소독 그리고 명부를 확인한다. 그 후 강연에 앞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과 예총에서 준비한 선물 꾸러미를 안내했다. '탁탁탁' 계속해서 계단을 걷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한 분 입장하고 또 오고 한 분 입장하고 또 오고. 강연 시간이 임박하자 매장 안은 사람들로 복작복작였다. 지금껏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체험이나 강연은 진행한 적은 있었지만, 오늘처럼 20명이나 참가한 적은 처음이다. '이 인원들을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안정적으로 안내할 수 있을까.' 곧이어 스크린의 화면이 뜨자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잦아들었다. 분위기가 고조되어감에 따라 카운터에서 지켜보는 우리 또한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오늘의 북토크 진행자는 <퇴사는 여행>, <독립은 여행>을 쓴 정혜윤 님이다. 10년 동안 에이전시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 마케터로 일해오다 지금은 프리랜서 마케터로 독립한 작가님은, '스스로를 브랜딩 하며 독립적으로 사는 방법'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차례 회사를 옮기면서 성장한 본인의 경험담이라든가, 여행지에서 체험한 특별한 시간,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리추얼까지 90분 내내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고 열변을 쏟았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든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어떻게 프리랜서의 길로 뛰어들었나요?' '나를 브랜딩 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등 이 사람 저 사람 오가며 질문했다. 작가님은 북토크 경험이 많으셨는지, 능숙하게 답변하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시간이 지났다. 어떤 부모님은 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참가했는데, 영어 수학 수업까지 취소하고 왔단다. 학원보다 아이의 삶에 또 다른 움직임이 싹 틀 수 있도록 생생한 경험담을 듣게 해주고 싶었으리라. 강연이 끝난 뒤 사람들은 저마다 작가님의 책을 집어 사인을 받았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의 싹이 될 수 있도록 계기를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6시가 훌쩍 넘은 시간, 북토크에 참가한 작가와 참여자들은 다들 나가고 없다. 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자리한 상태였다. 노래를 듣기 좋은 시간대이다. 이윽고 미니 콘서트에 참가 신청을 한 사람들이 속속 들어오고 순식간에 매장이 꽉 찼다. 가슴팍에 아기를 안고 방문한 부부도 보였다. 웅성웅성 이는 소리도 잠시,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면서 매장이 고요해졌다. 공기도 차분하게 가라앉을 정도로 조용했다. 모든 사람이 말없이 미니 콘서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저녁 7시. 한보나 님의 청아한 목소리가 매장에 울리면서 미니 콘서트가 열렸다. 매장 안 잔잔하게 퍼지는 가수 님의 맑고 따뜻한 소리가 여행객의 마음을, 퇴근하고 지친 직장인들의 노고를 어루만졌다. 옆에서 피아니스트 손명남 님도 반주를 도우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콘서트 중간중간 곡도 소개하고 스몰토크도 섞어가며 시중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차디찬 겨울 날씨를 따뜻하게 녹이는 듯했다.
<춘천>, <지누아리>, <그 섬을 해치지 마요> 등 자작곡 위주로 노래한 한보나 가수는 다음 곡으로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보였다. 바로 <Have you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란 캐럴 송이었다.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Let you heart be light. From now on..." 어렸을 때부터 듣던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로 들려온다. 나 또한 반주에 따라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날이라서 그런지, 유독 더 포근하고 감싸안는 기분이 들었다. 매장에 앉은 사람들도 노래를 들으며 가볍게 몸을 움직이거나, 팔을 올린 채로 좌우로 흔들며 온몸으로 노래를 즐겼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서로 몸을 기대며, 부모 자녀가 함께 손을 잡으며, 아이를 가슴에 품은 채 다독이면서 말이다.
2절까지 노래를 마치고 가수 분께서 "모두들 즐겁게 듣고 계시지요?" 하고 말을 건넸다. 그때 예상 못한 곳에서 반응이 나왔다. 아빠 가슴팍에 얌전히 안겨 있던 아기가 저 혼자 "아우!" 하며 소리를 낸 것이다. 그 타이밍이 마치 '저도 노래 잘 들었어요.' 하고 화답하는 듯해서였을까? 매장은 하하호호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2021년 연말, 1년을 마무리하는 순간이다.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올해는 시작부터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가게를 준비할 때부터 아파트 공용배관이 터지고,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도 많았다. 가게를 운영하는 일도 결코 녹록지 않았다. 손님이 없는 날도 많았고, 서가를 둘러보고 그대로 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좀처럼 손님이 늘지 않아 이대로 사람들에게 외면받나 하고 걱정한 날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받은 날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공간이 밝고 환해서 너무 좋아요." "매장 분위기뿐만 아니라 두 분 인상도 참 선해 보이세요." "두 분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듯한 부부 같아요."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매장을 찾은 사람들의 지지와 성원 덕분이지 싶다. 내년은 또 어떤 식으로 보내게 될까? 아마 올해보다 더 다양하게 시도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초당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내년은 더 많이 도전해 봐야지. 우리 가게 혼자서도 괜찮지만, <다 함께 돌자 초당 한 바퀴> 처럼 동네 가게들이 모여 참여하는 기획도 좋을 듯 싶다. 여하튼 파이팅이다. 울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