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네가 물었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별 탈 없이 그 긴 시간을 살아낼 수 있을까.
때론 삶이 너무 외롭고 어려우면 어떡하지?
더 나이 들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삶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걸까.
그런 너에게,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어느 봄날, 할머니는 길가에 버려진 화분 속에서
메마른 꽃봉오리를 뜯어 냈어.
"쉽게 말하믄, 이게 꽃나무 하나여.”
꽃봉오리 속엔 작지만 옹골찬 씨앗들이 들어 있었어.
이상하지, 분명 메말라 보였는데.
있잖아,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이걸 심으면 또 꽃이 핀대.
할머니는 꽃봉오리를 손에 쥐고 집까지 걸었어. 어떻든지 간에 한 번 심어보겠다며,
손톱만 한 꽃봉오리가 훗날엔 산봉우리처럼 자랄지 모른다고,
또 우리 할머니는 마을에서 아주 오래 웃고, 오래 자고 오래 먹는 사람이야.
삼밭에 뿌리 엄청난 걸 매고 돌아오는 날엔 밭 흙이 고스란히 묻은 손으로 전화를 걸어.
콩 심고 보름 정도 있다가 또 팥 심고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이쪽은 남쪽이라 더 덥다, 그래도 할미는 괜찮다면서.
시장에서 사 온 삼 만원어치 홍어는 신기하게도 항상 잔뼈가 굵고,
늙으면 뼈가 싫어지더라며 할머니는 저녁마다
아주 오랫동안 요리조리 홍어를 매만져.
그렇게 뼈를 걸러낸 홍어 무침에 배를 썰어 넣는 건 내 몫이야.
할머니의 뱃심이 더욱 달아지도록.
시금치 씨는 가을에 심어서 봄에 먹는대.
봄에 먹으면 연하고 여름에 먹으면 뻣뻣하다면서
눈밭에서 자란 게 더 연하고 좋아서 가을에 미리 달게 자는 땅을 깨우는 거야.
오늘도 할머니는 매일매일,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어.
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아직 마음만 가빠 헤아릴 수 없는 위로들을
우리 할머니는 알고 있을 것 같았어.
할머니 이야기를 빌려서 네게 위로를 보내.
오랜 시간이 지나고 우리 두 사람이
아주 오래 웃고 아주 오래 자면서
혼자서도 아주 오래 살아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한 할머니가 되면
몇 번이고 계속 서로의 안부를 이야기하자.
*본문에서 언급된 음악
장혜영-'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글: Editor 영
살아왔고 살아 냈으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오늘의 삶을 받아 든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순례 씨의 따뜻한 응원
삶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날에는 나의 할머니이자 우리 모두의 할머니, 순례 씨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힘겨움이 없지 않았고 슬픔이 없지 않았던 긴 세월을 지나왔지만 순례 씨의 일상은 늘 정성스럽고 반듯하고 건강합니다. 순례 씨는 왜 사냐고, 무엇을 이루겠냐고 묻는 법이 없습니다. 그저 살아 있기에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의 생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당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물려주었습니다. 순례 씨가 살아온 지혜를, 살아 낸 단단함을, 살아가는 힘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