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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뱃속 북레시피 - 『마을을 바꾼 장난』

by 고래뱃속
마을을 바꾼 장난 × 매사가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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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아직 작고 유약한 몸과 그에 비해 지나치게 팔딱팔딱 뛰던 심장을 지닌 아이였을 때. 나는 무엇이든 ‘장난삼아’ 엉뚱한 일을 벌여 가족과 이웃 어른들의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넌 매사가 장난이지 아주? 좀 진지해져 봐.”

“학교는 놀이터가 아니야!”

말썽을 부리거나 큰 사고를 일으켜서 꾸중을 들을 때마다 주변의 선생님들과 사부님에게 듣던 말이다. 그 시절의 난 항상 저 말들을 받아넘기며 뱃심을 키워 왔다. 일상 속 지루하고 평범한 일도 장난이 가미되면 순식간에 마음을 끌어당겼다. 알쏭달쏭한 일, 새콤달콤한 맛, 어른들의 세계에선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요술 씨앗. 이것이 어린 내가 품었던 장난의 매력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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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난”이란 그 무렵의 나에겐 마법의 주문과도 같던 말이다.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척척 들어맞는 마법의 퍼즐 조각을 찾은 기분. 이 퍼즐 조각과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픈 욕심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작은 주먹 안에 말아 쥔 채 고집을 부렸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았을까.

한철 장사하듯 장난의 씨앗을 뿌리고 장난 밭을 일구고 달고 재미난 열매를 맛보면서 작은 머리로 깨달은 것이 있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나 번뜩이는 생각, 일상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삶의 힌트가 불현듯 눈에 띄는 첫 순간을 만나게 될 때. 바로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무언가가 나를 향해 ‘꿈틀’거리는 신호를 준다는 것. 처음 느껴 보기에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만났을 때 꿈틀대는 심장과 꿈틀대는 눈썹, 들썩이는 손가락부터 발끝까지, 생명력을 품은 씨앗 하나가 몸속에서 팡! 피어 오른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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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처럼 심장 한구석이 꿈틀꿈틀 저려 오는 장난을 나는 하나 알고 있다.

이는 나의 할머니가 마음속 비밀 장소에 고이 숨겨 놓았던 이야기이다. 아직 내가 어머니의 배 속에서 작은 씨앗으로 꿈틀거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배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가 아기 주먹 만한 배를 감싼 봉지를 만져보니, 문득 그날따라 묵직하더란다. 그 속에 숨어 있던 것은 새가 물어다 넣어 두고 간 오만 가지 씨앗들. 배 봉지의 주둥이를 꽉꽉 동여매어 놨었는데 새들은 무슨 수로 장난을 쳤을까? 얼떨결에 숨바꼭질 장난에 이끌린 어린아이처럼, 할아버지는 술래에게 씨앗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주먹 안에 봉지를 꼬옥 숨겨 쥐고서는 걷는 듯 뛰는 듯 집으로 돌아왔다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씨앗들을 넣은 주머니를 문간에 매달아 놓고, ‘새들이 물어다 준 행운이니 손지 몫이다’ 하며 애지중지 했단다. 손지가 태어나면 이야기해 줄 놀이가 하나 늘었다며 아주 즐거워하던 할아버지. 그 무렵 할아버지는 새와의 이 사랑스럽고 비밀스런 장난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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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꿈틀대면, 나뿐이던 하루에 사람이 하나둘 모이면 어디선가 분명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우리의 삶이 문득 갑갑하게 느껴질 때, 어떠한 색도 냄새도 소리도 내 마음에 닿지 않을 때, 논리와 상식의 틀을 벗어난 일을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렸을 때. 그럴 때 심각하게 무거워지기보다 가벼운 장난의 힘을 빌려 유머러스하게 받아넘겨보면 어떨까. 쓸데없는 걱정은 옷깃에 붙은 먼지처럼 가볍게 털어 내고 웃어 보는 여유. 상대를 향한 애정을 장난에 실어 건네 보는 다정함.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장난의 퍼즐 조각을 발견해 한바탕 웃고 떠들고픈 마음. 이런 소소한 기쁨들을 잊지 않는 한,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깨우는 장난이 사라질 날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닫힌 마음을 열어 주는 작은 두드림,
[일상 속 ‘장난’ 레시피]

1. 서로를 부르는 호칭, 혹은 애칭을 새롭게 바꿔 불러 보기
2. 추억이 담뿍 담겨 아껴 온 나만의 물건을 서로 바꿔 사용해 보기
3. 상대방의 개성이 녹아든 말투 따라해 보기
4. 서로의 취향이 묻은 OOTD(Outfit Of The Day) 옷 스타일을 하루 동안 바꿔 입어 보기
5. 서로의 공간이나 옷 주머니 속에 비밀 쪽지 숨겨 놓기

농담인 듯 진심인 듯 유쾌한 장난 한 알로 오늘 하루의 기분을 바꿔 볼까요?
혹여 어안이 벙벙해지더라도 요리조리 곱씹어 볼수록 ‘풉~!’ 풋웃음이 나오게 되는, 한 줌의 가벼운 유머 섞인 시도라면 무엇이든 통과입니다! 다만, 장난 꽃을 피우다 문득 짜게 식어 버린 상대방의 눈빛을 마주한다면? 거기서 그만!



글: editor 영




마을을 바꾼 장난 | 승정연 글·그림|2017년 11월 27일|13,000원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작은 두드림, 장난
『마을을 바꾼 장난』의 주인공은 평범하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주인공의 관점에서 장면 장면을 그려나갑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색다른 시선은 마을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마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일상의 풍경들을 나의 시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 풍경들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가끔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삭막한 세상에 어제와 다른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지나치지만 않다면 장난은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작은 두드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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