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있다 X 쓸모없음의 쓸모
"필요한 것만 있고 필요 없는 것은 사라진 세상에서 처음으로 생활에 필요도 없는 이상한 소리를 박사님이 들었던 거야."
_본문 16쪽
세상에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필요한 것들만 남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그나저나, 불필요함과 필요함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기는 한 걸까요?
‘불필요한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바람에, 냄새나고 불편한 방귀마저 사라진 세상! 그리고 어느 날, 엉뚱한 박사가 발견한 살아남은 방귀 한 줄기’라는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한 이야기, 『모든 것이 다 있다』는 필요·불필요의 관계를 통쾌하게 전복시키며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자, 그럼 우리 한번 골똘히 되짚어 봅시다.
우리가 주변에서 불필요하다, 쓸모없다, 혹은 불편하다 여기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불필요함의 이면에는, 어떤 이름들이 숨겨져 있는지를 말이에요.
1. 모기, 파리 같은 해충들
윙윙, 지잉지잉, 귓가를 찔러 오는 그 끔찍한 소리들!
덕분에 여름은 정말 성가셔. 우리를 괴롭히는 이 벌레들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2. 의미 없는 장난
대체 장난 같은 건 왜 치는 거야? 아무 의미도 없고, 거기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장난 한번 칠 시간에 교과서 한 자라도 더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3. 알 수 없는 잠꼬대
듣는 사람은 어이없고 하는 사람은 기억도 못하는 잠꼬대.
알 수 없는 말 몇 마디 중얼거릴 바엔 차라리 뒤척임도 꿈도 없는 숙면이 좋은데···.
4. 모두의 적, 늦잠
학교에 갈 때도, 우리 엄마 아빠 출근할 때도,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에도 도무지 도움이 되는 법이 없지.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몸을 일으켜주는 마법의 약 같은 게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5. 부스스한 머리카락
저 먼 행성에서 삐용삐용 우주 수신을 받기라도 하는 거야?
지저분하고 신경 쓰이는 옆머리 같은 건 정말이지 안 자랐으면 좋겠어!
누구한테서든 머리카락이 단정하고 부드럽게 쭉쭉 뻗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6. 잘라내도 잘라내도 자라나는 손톱 발톱
엄마가 잔소리해서 깎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손톱 발톱이 곰발바닥만큼이나 자랐어.
때만 되면 너무 밭지도 않게, 너무 길지도 않게 간격 맞춰 딱딱 잘라 줘야 하는 손톱 깎기는 정말 귀찮아!
7. 바보 같은 말싸움
가끔 그럴 때 있잖아? 친구들과 이 말 저 말 주고받다 보면
둘 다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서로 반박하고 우기고 있을 때.
그때는 머리끝까지 열 올리며 서로 얼굴에 침 튀기고 그랬는데,
지나고 보면 참 그게 무슨 일이었나 싶어. 바보 같은 말싸움은 정말 그만하면 안될까?
8. 쓰고 남은 티켓
한 번 발급받고 입구에서 확인받으면 금방 버려 없어져 버릴 거,
왜 매번 귀찮게 사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핸드폰으로 달까지도 갈 세상인데, 티켓도 똑똑하게 다 전자로만 끊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9. 더러운 지우개똥
틀린 문장을 고치려고 벅벅 그은 자리에 돌돌돌 흩어지는 요 말썽꾸러기들.
털어 내는 것도, 다 떨어진 지우개똥을 치우는 것도 귀찮단 말이지.
아무리 지워도 흔적 같은 건 남지 않는 지우개가 있었으면 좋겠어!
10. 먹고 남은 과일 껍질
먹을 땐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들. 그나저나, 껍질 같은 건 왜 있는 거야.
알맹이만 요로코롬 예쁘게 쏙, 입안에 간편하게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 새와 개구리의 밥
사실 모기나 파리 같은 해충도 새와 개구리 같은 친구들에겐 맛있는 식사 거리야.
나에게 성가시다고 다른 소중한 생명들의 먹을 거리까지 빼앗아 버리면 안되겠지···.
2. 일상 속 재미
어깨가 괜히 축축 처질 때,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괜히 한숨만 푹푹 쉬게 될 때···
옆에서 친구가 실없는 장난 한번 치는 바람에 풋, 웃게 되면 괜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
3. 무의식의 소리
일상 속에서는 가면을 쓰고 사는 우리지만, 가끔 무의식 속에서는 진실의 소리를 마주하게 되지.
게다가 가끔 내 옆 사람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얼마나 엉뚱한 이야기 속에 휘휘 거닐고 있는지 엿듣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4. 오늘을 더 천천히
아무 일도 없는 날, 늘어지게 자는 늦잠이 얼마나 달콤한지 혹시 경험해 본 적 있니?
곰돌이 푸가 사랑하는 꿀단지 속 꿀보다 더 달달할걸.
가끔씩 늦잠의 여유를 부려 보는 것도 너에게 시간을 더 천천히 살 수 있는 능력을 선사해 줄 거야.
5. 사랑스러움 한 스푼
이제 막 아침잠에서 깬 네 얼굴 옆에 붙어 꼬불거리는 머리카락 한 줄기가 얼마나 귀여운지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다 똑같은 모양이라면 얼마나 지루할까.
나는 네가, 사랑스러운 곱슬머리라서 정말 좋아!
6. 내 손끝의 보름달
가끔 시간이 너도 모르게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리기만 하는 것 같진 않니?
밤하늘 머리 위에서 차고 기우는 달이 나날의 흐름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듯,
사실은 네 손톱 발톱 끝에도 달님이 있는 거야.
차고 기우는 우리 몸의 달을 조심스레 다듬어 가며,
우리가 잊지 않고 시간의 매무새를 어루만질 수 있도록.
7. 생산적인 갈등
서로 다 참고 착하게만 굴면 이 세상이 정말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가끔은 속에 있는 의미 없는 말들도 다 털어 놓고 티키타카해 봐.
속 안에만 똘똘 뭉쳐 있던 검은 덩어리가 거짓말처럼 풀리는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리고 생각해 봐···.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금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열 올리는 두 사람 모습이 얼마나 시트콤인지!
이 세상엔 그런 시트콤 하나쯤 필요하다고.
8. 추억 한 조각
호주머니 안에 깊숙이 넣어 둔 채 까먹었거나, 서랍 안에 다른 서류들 사이에 섞여 잊은 종이 쪼가리.
그런 물건이 가끔은 불쑥 나타나, 시간 여행의 매개체가 되어 주기도 하지.
한 뼘도 안 되는 그 작은 종잇조각 하나로 가끔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열쇠를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걸!
9. ‘내가 여기에 있었어요’
있던 것이 없어진 자리, 그리고 있었던 것을 지우는 행위에는 모두 흔적이 남지.
지운 기억과 지우는 몸짓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만 한다면,
우리네 삶에는 시도 노래도 없었을 거야.
무언가가 이 자리에 있었다는 바로 그 흔적을 지도 삼아,
우리는 덧없이 사라져가는 것들을 헤아릴 수 있지.
우리가 고갤 들어 어둠 속의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야.
이미 사라진 뒤에도, 저 별빛은 몇 억 광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의 망막에 닿으니까.
10. 거친 세상 속의 보호막
그거 아니? 인간에게도 껍데기가 있다는 걸 말이야.
새빨간 사과 껍질도, 점박이 바나나 껍질도, 울퉁불퉁 파인애플 껍질도 모두 끝내 버려질지라도,
벗겨내고 벗겨내는 수고를 감당하고 난 뒤엔 달콤함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걸 알려주지.
무엇보다, 그 껍질이야말로 맹맹한 속내가 달콤하게 무르익을 수 있도록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를 지켜 준 갑옷이라고!
어때요? 우리가 쓸모없다 여기는 주변의 모든 작고 하찮은 것들이, 사실은 그 이면에 이처럼 반짝이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그 이름을 영영 모른 채 살아가지 않도록, 가끔은 쓸모없는 것들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는 시간도 가져 보세요. 오늘처럼,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속삭임들을 듣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쓸모 있는 게 있으면 쓸모없는 것도 있어야 해. 그것이 쓸모없는 것의 쓸모인 거야.”
_본문 51쪽
글: Editor LP
불필요한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
쓸모없는 것들이 간절해졌다
필요 없는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들만 남아 똥도 오줌도 방귀도 공해도 말다툼도 없는 완벽한 세상. 모든 것이 다 있는 곳에서 발명할 것을 찾던 엉뚱한 박사님은 인류 최후의 방귀 한 조각을 만나고 그 매력에 반해 정성껏 부활시킨다. 노란빛 방귀는 감정이 사라진 무채색 세상을 생기 있고 아름답게 물들이고, 다채로운 방귀 소리의 향연은 자취를 감추었던 음악으로 탈바꿈해 다시 살아난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하찮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인생의 진짜 소중한 가치들을 유쾌한 상상으로 살려 내는 이야기.